리버풀 위르겐 클롭 감독 연봉 재계약 나이 키 프로필 국적
2022. 8. 20. 11:21ㆍ카테고리 없음
- 클롭 감독의 2023년 시즌 연봉은??
위르겐 클롭 리버풀 감독은 본인보다 코칭스태프를 먼저 챙겼다.
리버풀은 2022년 4월 29일(한국시간) “클롭 감독과 재계약을 체결했다. 계약 기간은 2024년까지”라고 공식 발표했다. 이로써 클롭 감독은 2015년 10월에 부임한 이래로 약 10년간 리버풀 벤치를 지킬 전망이다. 또한 현직 프리미어리그 감독 중 최장수 기록을 이어간답니다.
영국 ‘디 애슬레틱’의 데이비드 온스테인 기자가 클롭 재계약 비하인드 스토리를 들려줬다. 온스테인 기자는 “리버풀과 클롭 감독의 재계약은 속전속결로 진행됐다. 클롭은 자신의 에이전트에게 존 헨리 구단주와 연락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리곤 연봉 인상 없이 빨리 재계약을 맺고 싶다고 말했다. 곧바로 제계약이 체결됐다”고 전했다.
클롭 감독이 원하는 건 자신을 보좌하는 코칭스태프들의 연봉을 올리는 것이었다. 온스테인 기자는 “클롭 감독은 재계약을 맺으면서 코칭스태프들의 연봉을 인상해달라고 요청했다. 이번 계약으로 코칭스태프 연봉이 총 200만 파운드(약 31억 6천만 원) 올랐다”고 덧붙였답니다.
리버풀과 10년 동행을 보장받은 클롭 감독은 “지금 내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단어가 너무 많다. 기쁘고, 영광스럽고, 흥분되고, 특권을 누리는 느낌”이라면서 “이곳 리버풀을 사랑하는 마음이 정말 크다. 리버풀에 오기 전부터 그 마음이 있었는데, 오고 나서 더욱 커졌다. 앞으로도 더욱 더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클롭 감독은 리버풀 지휘봉을 잡고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잉글랜드 리그컵,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UEFA 슈퍼컵, 국제축구연맹(FIFA) 클럽월드컵에서 1회씩 우승했다. 올 시즌에는 이미 리그컵 우승을 확정했으며, FA컵 결승에도 진출했다. 챔피언스리그에서는 4강 1차전에서 2-0 승리를 거둬 결승행이 유력하다. 프리미어리그 역시 치열한 우승 경쟁 중이다. 최대 4관왕까지 노려볼 수 있답니다.
- 클롭 감독 프로필 경력 이력
본명 이름
위르겐 노르베르트 클로프
출생 나이
1967년 6월 16일 (55세)
고향 출생지
서독 바덴뷔르템베르크주 슈투트가르트
국적
독일
신체 키 몸무게
키 193cm / 체중 83kg
종교
개신교(루터회)
소속
선수
SV 글라텐 (1975~1983 / 유스)
TuS 에르겐징겐 (1983~1987 / 유스)
1. FC 포르츠하임 (1987)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 (1987~1988)
빅토리아 진들링겐 (1988~1989)
로트바이스 프랑크푸르트 (1989~1990)
1. FSV 마인츠 05 (1990~2001)
감독
1. FSV 마인츠 05 (2001~2008)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2008~2015)
리버풀 FC (2015~)
- 선수 경력
FSV 마인츠 05에서 11년 간 선수 생활을 했으며, 처음은 스트라이커였다가 28살 때 수비수로 전향했다고 한다. 비록 위르겐 클린스만 같은 화려한 선수 생활은 아니었지만 나름 밥값 하는 선수였던 듯. 수비수로 전향한 후에도 공격수 출신답게 종종 원더골을 보여주었다.
본인의 표현을 쓰자면 "기술적 역량은 5부 리그 수준, 전술적 이해도는 1부 리그 수준, 그래서 총합 2부 리그 수준의 축구선수"였다고 한다.# 그리고 정말로 2부 리그 마인츠에서 11시즌을 뛰면서 은퇴했다. 워낙 오래 뛰어서 이래 봬도 마인츠 구단 역대 득점 3위다.
2000-01 시즌 후반기, 성적 악화로 감독 자리가 공석이 되자 구단은 선수로 뛰며 훌륭한 리더쉽과 전술 이해도를 보인 클롭에게 선수 겸 감독이 되어달라는 모험을 제안하였고, 클롭은 두 일을 병행하면 이도 저도 안 될 것 같다고 생각했기에 아예 선수 생활 은퇴를 선언, 코칭 경험도 없었던 34살의 젊은 나이에 감독 커리어를 시작하게 되었답니다.
- 감독 경력
- FSV 마인츠 05
2000-01 시즌 후반기 중에 감독으로 부임한 클롭은 첫 7경기에서 무려 6승을 거두며 팀을 14위까지 끌어올렸고, 결국 3부 리그로 강등당할 위기에 처했던 마인츠를 가까스로 구해내는 데에 성공하였다.[6] 선수 시절 자신을 지도했던 은사 볼프강 프랑크의 영향을 받은 클롭은 첫 풀시즌인 01-02 시즌부터 본격적으로 유기적인 움직임과 강력한 압박을 요하는 축구 철학을 마인츠에 녹여내기 시작하였다.
그 결과, 분데스리가 2부 리그에서도 중하위권을 맴돌던 마인츠를 14위에서 무려 4위까지 단번에 끌어올렸고 1부 리그 승격까지 도전했으나 승점 단 1점 차로 아쉽게 고배를 마셔야 했다. 다음 02-03 시즌에는 그보다 더한 골득실 단 1골 차로...
하랄트 슈트루츠 마인츠 회장의 말에 따르면 당시 승격에 실패한 후, 클롭의 눈에는 눈물이 가득했으나 딱 하루 뒤, 선수단과 함께 팬들 앞에 서서 다시 일어날 것이며 절대로 무너지지 않는다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신인 감독이 겪기엔 가혹할 정도의 멘탈이 나갈 법한 암울한 상황에서도 클롭은 절대 포기하지 않았고, 끝내 03-04 시즌 세 번의 도전 끝에 마인츠 창단 역사상 99년 만에 첫 1부 리그 승격에 성공하였다.
분데스리가 승격 이후 중위권의 성적까지 하고 페어플레이 1위로 UEFA컵에 출전했을 때도 토너먼트까지 진출하며[7] 순항했던 마인츠는 승격 세번째 시즌이었던 06-07 시즌에 16위의 저조한 성적을 거두고 결국 강등당하고 만다.[8] 클롭은 마인츠에 남았으나 07-08 시즌에 마인츠가 아쉽게 승격에 실패하자, 자진 사임의 뜻을 밝혔다.
그렇게 선수로 11년, 감독으로 7년 무려 18년을 몸담으며, 마인츠에서 하나의 상징과 같았던 클롭은 모든 책임을 짊어지고 클럽을 떠났다. 이 때까지만 해도 클롭은 그저 '유망한 젊은 감독' 정도였답니다.
-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2007-08 시즌에 리그 13위까지 추락했던 보루시아 도르트문트가 40세에 불과한 클롭에게 러브콜을 날렸다. 원래 분데스리가 전통적인 명문 클럽이던 도르트문트는 지난 수 년간 극심한 부진 끝에 중위권을 겨우 맴도는 수준이었고, 예전의 영광은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는 2003년부터 시작된 재정난 때문으로, 도르트문트는 같은 리그의 바이에른 뮌헨에게까지 돈을 빌려야 했을 정도로 극심한 상황에 시달리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은 앞으로 도르트문트는 그저 그런 중위권 팀에 머물 것이라고 예측했고, 실제로 당시의 부진한 기록은 그것을 증명해주고 있었다.
클롭은 이런 도르트문트의 감독으로 부임하자마자 대대적인 리빌딩에 돌입하였다. 일명 클롭식 알짜 영입이라고 불리었는데, 팀의 어려운 재정에 맞춰 그에 맞게 가성비 좋은 알짜배기 선수들을 영입하기 시작했다.
부임 첫 해에 펠리페 산타나, 이영표, 네벤 수보티치 등을 도합 800만 유로도 안되는 가격에 데려온 것을 시작으로 리그 6위를 차지하며 가능성을 보인 클롭은, 그 다음 시즌에 향후 도르트문트 부활의 주축이 되는 마츠 후멜스, 스벤 벤더, 케빈 그로스크로이츠, 루카스 바리오스를 모두 합쳐 약 1000만 유로로 영입해 리그 5위까지 기록했다. 이전보다 눈에 띄게 향상된 경기력과 높아진 순위에 독일 언론사들은 모두 클롭이라는 젊은 감독에게 주목하기 시작했고, 그의 노력은 점점 결실을 맺어가고 있었답니다.
부임 세 번째 시즌인 2010-11 시즌, 클롭은 팀의 믿음직스러운 풀백이 된 우카시 피슈첵을 이적료 한 푼 없이 영입했고, 카가와 신지를 단돈 50만 유로에 영입했다. 이뿐만 아니라 유스팀에서 주목할 만한 활약을 선보이던 마리오 괴체를 1군으로 불러들였으며, 지금까지도 클롭 최고의 영입이라고 일컬어지는 로베르트 레반도프스키를 폴란드 리그에서 약 450만 유로라는 매우 싼 가격으로 영입했다. 이 4명의 선수들은 이적해 온 첫 해부터 엄청난 활약을 선보였고, 이른바 센세이션을 일으키게 된다. 이러한 폭풍 활약을 바탕으로 도르트문트는 꿈에 그리던 분데스리가 마이스터샬레를 9년 만에 들어올렸답니다.
2011-12 시즌, 팀의 핵심 미드필더였던 누리 샤힌의 레알 마드리드 이적으로 인한 전력 손실이 우려됐으나 일카이 귄도안을 싼 값에 영입하여 공백을 메꾸었고, 결국 리그 초반의 부진을 씻어내며 28경기 연속 무패 행진[9]을 내달렸다. 그 결과, 승점 81점을 쌓으며 당시 분데스리가 최다 승점 신기록까지 갈아치우는데 성공, 분데스리가 2연패의 위업을 달성하게 된다. 게다가 포칼컵 결승에서도 바이에른 뮌헨에게 5:2 완승을 거둬 23년 만에 DFB-포칼 우승을 맛봤고, 끝내 클롭은 도르트문트 구단 역사상 최초의 더블까지 이룩하였다.
한편 클롭의 영입과 육성을 통해 성장한 주축 선수들의 엄청난 활약은 꿀벌 군단에게 양날의 검이 되기도 했는데, 마리오 괴체와 카가와 신지, 로베르트 레반도프스키 등의 활약상이 워낙 센세이셔널해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바이에른 뮌헨, 레알 마드리드 등 빅클럽들의 주목을 잔뜩 끌게 되었기 때문이다. 결국 지난 시즌 누리 샤힌에 이어, 또 다시 팀의 핵심이었던 카가와 신지를 맨유로 보내게 되면서 전력에 큰 차질이 생길 듯 했으나, 클롭은 보란듯이 공백을 잘 메워냈다.
2012-13 시즌,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의 에이스이자 유로 2012에서 좋은 활약을 선보인 마르코 로이스를 영입하며 한 층 더 강력해진 라인업을 구축하는데 성공했다. 카가와 신지의 이적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엄청난 경기력으로 상대를 압도하는 모습을 보여, 분데스리가에서 상위권을 유지하였다. 특히 챔스에서는 레반도프스키, 마리오 괴체, 마르코 로이스의 말도 안 되는 활약을 바탕으로 죽음의 D조에서 레알 마드리드, 맨체스터 시티, 아약스를 꺾고 총 4승 2무를 기록하며 당당히 조 1위로 16강 토너먼트에 진출하였답니다.
이후 16강에서 샤흐타르 도네츠크, 8강에서 말라가를 차례로 꺾었고 4강에서 다시 만난 무리뉴의 레알 마드리드를 합계 스코어 4-3으로 또 무너뜨리는 충격적인 결과물을 만들어내며, 16년 만에 UEFA 챔피언스 리그 결승 진출까지 이뤄내었다. 공교롭게도 결승전에서 만난 상대는 FC 바르셀로나를 처참히 무찌르고 올라온 바이에른 뮌헨. 챔스 결승전에서 팀의 주축인 마리오 괴체가 부상으로 출전하지 못하는 불리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로만 바이덴펠러와 마누엘 노이어가 미친 듯한 선방 대결을 보여주며 엄청난 명승부를 펼쳤다. 하지만 결국 경기 막판에 아르연 로번에게 결승골을 실점하여 아쉽게 1-2로 패배하고 말았고, 더불어 리그에서도 바이에른에 밀려 준우승을 기록했답니다.
지난 시즌 도중 역대급 통수 마리오 괴체가 바이에른 뮌헨으로의 이적을 확정 지음에 따라, 또 다시 전력에 큰 난항을 겪게 된 클롭의 도르트문트는 2013-14 시즌을 앞두고 헨리크 미키타리안, 피에르에메릭 오바메양 등을 영입하면서 전력을 보강하였다. 시즌 전초전인 DFL-슈퍼컵에서 과르디올라의 바이에른 뮌헨을 4-2로 꺾어내며 우승을 차지, 기분 좋게 시즌을 시작하였다. 도르트문트는 리그 초반에 좋은 경기력을 선보였지만, 막강한 자금력과 유럽에서도 손꼽히는 스쿼드를 갖춘 바이에른의 기세를 꺾기엔 역부족이었답니다.
게다가 리그 초중반부터 시작된 주축 선수들의 줄부상과 각종 악재들이 겹쳐 레버쿠젠에게 2위 자리마저 내주고 말았다. 그러나 휴식기를 지나고 주전들이 복귀하자마자 경기력을 다시 끌어 올리면서 리그 2위를 되찾았다. 그리고 벌어진 시즌 두 번째 데어 클라시커에서 바이에른을 3:0으로 털어버렸다. 클롭의 전술적 역량을 다시 확인하게 된 장면. 하지만 결국 리그는 2위로 마쳤고, DFB-포칼에서 바이에른에게 0-2로 패배하면서 2년 연속 준우승 더블을 하고 말았다. 그러나 마리오 괴체를 시즌 시작도 하기 전에 뺏기고, 팀의 주포인 로베르트 레반도프스키가 시즌 도중 보스만 룰로 바이에른 이적을 확정지었으며, 심지어는 시즌 내내 포백이 박살나는 부상 병동 속에서 이러한 성과를 낸 것은 매우 훌륭한 성과임은 부정할 수 없답니다.
매년 팀의 핵심 선수들이 빅클럽으로 이적을 하는 암울한 상황을 겪었지만, 클롭은 그 공백을 오버페이 없이 적절한 선수 영입 및 육성을 통해 잘 메워갔고 또 분명히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둬왔는데, 2014-15 시즌은 골잡이 레반도프스키의 공백을 메우는 것이 가장 큰 관건이었다. DFL-슈퍼컵에서 작년에 이어 다시 한번 바이에른을 꺾고 슈퍼컵 2연패를 차지하며 시즌을 기분 좋게 시작했지만, 정작 리그가 시작되자 큰 부진에 빠지는 모습을 보였답니다.
일단 지동원, 아드리안 라모스, 치로 임모빌레 등 괜찮은 자원들을 많이 데려왔지만 적응 실패 등으로 인해 전혀 효과를 보지 못했으며, 이전에 뛰어난 활약을 보였던 카가와 신지를 다시 데려왔음에도 예전의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다. 아스날과의 챔피언스 리그 경기에서 특유의 게겐 프레싱으로 다시 엄청난 경기력을 보여주었으나, 리그에서는 계속된 부진을 겪어 하위권을 맴돌았다. 주축 선수들의 이탈과 마르코 로이스, 마츠 후멜스, 일카이 귄도안 같은 핵심 선수들의 장기 부상 및 후유증으로 인한 컨디션 저하 그리고 헨리크 미키타리안, 아드리안 라모스와 치로 임모빌레의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는 부진이 큰 원인이었답니다.
챔스에서는 게겐 프레싱에 상대적으로 익숙치 않은 팀들을 압살하는 경기력을 보여주지만, 분데스리가의 팀들은 위르겐 클롭의 전술에 이미 익숙한데다 파훼법을 발견했기에 별로 재미를 보지 못했다. 2013-14 시즌까지는 경기력이 좋지 않더라도 어떻게든 로베르트 레반도프스키의 사기적인 결정력으로 승점을 벌어오는 경우가 많았는데, 레반도프스키의 이탈로 공격력이 확연히 줄어들면서 승점 챙기기에 실패한다는 것이 문제였다. 이러한 복합적인 요인으로 도르트문트는 전반기에 17위까지 쳐지는 최악의 상황을 겪었으나, 후반기에 경기력을 어느정도 수습하여 결국 7위로 리그를 마무리하였답니다.
그러던 중 2015년 4월 15일, 2014-15 시즌을 끝으로 클롭이 자진 사임하여 도르트문트 지휘봉을 내려 놓는다는 소식이 나왔다. 후임으로는 토마스 투헬 전 마인츠 감독이 내정되었다.[12] 물론 일시적으로 성적 저하가 오긴 했지만, 그동안 도르트문트의 열악한 상황 속에서 엄청난 성과를 쌓아온 클롭에 대한 믿음이 여전히 있었기에, 도르트문트 팬들은 그의 자진 사임 소식에 큰 슬픔과 충격에 빠졌답니다.
클롭은 최근 들어 자신이 더 이상 도르트문트에 완벽한 감독이라는 답을 스스로 할 수 없었고, 팀에 변화가 필요하다고 판단했으며 지금이 바로 새 계획을 세울 적절한 순간이라 생각했다고 인터뷰를 통해 밝혔다. 또 팀보다 위대한 존재는 없기에, 한 사람의 존재가 너무 커져서 과거의 영광에 팀이 안주하는 것을 보고싶지 않았다고 덧붙였답니다.
그렇게 클롭은 도르트문트에서의 길었던 7년 감독직을 마무리하였다. 그는 2000년대 들어서 분데스리가는 무조건 바이에른의 우승이라는 공식을 깨뜨렸고, 무너져가던 꿀벌 군단을 다시 부활시켰을 뿐만 아니라 특출난 선수 구성 능력과 육성을 바탕으로 게겐프레싱이란 특유의 전술적 색채까지 이식하였다. 이 성과는 결코 분데스리가에서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고, 유럽대항전에서 유럽의 강호들과 겨뤄도 승리할 수 있다는 믿음을 안겨주었다. 그 결과 클롭의 도르트문트는 분데스리가 2회 우승, 챔피언스 리그 준우승, DFB 포칼 우승 등의 커리어를 쌓으며 유럽 전체에서도 인정받는 클럽으로 다시금 도약할 수 있었다. 동시에 그 역시 더 이상 젊고 유망한 감독만이 아닌 명장의 반열에 올라선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2015년 5월 31일, 볼프스부르크와의 DFB-포칼 결승전 직전에 클롭의 고별식이 이루어졌답니다.
- 리버풀 FC
도르트문트를 부활시킨 클롭에게 이번엔 또 다른 과거의 명가가 손을 건넸다. 2010년대에 들어 리버풀은 거의 매년 유로파권에만 맴돌았고, 과거에 유럽을 호령하던 그 위상은 이미 곤두박질쳐버린 상태였다] 국내, 해외를 막론하고 라이벌 팬들의 조롱거리로 전락했고, 팀 컬러나 전술적 특징도 전무했으며 나름 이름 좀 날린다는 선수들은 입단하기를 꺼렸던, 그야말로 우울한 암흑기 그 자체였다. 연이은 감독 교체의 실패로 유구한 역사를 뒤로한 채 정말 중위권 클럽의 위상으로 전락할 위기에 처한 리버풀에게 클롭은 최후의 한 수이자 마지막 희망이었답니다.
그리고 이러한 기대에 부응이라도 하듯, 클롭은 리버풀을 서서히 부활시켜 나갔다. 2015-16 시즌에 중도 부임하여 처음에는 리그 8위에 머물렀지만 UEFA 유로파 리그 결승까지 올라가는 등 가능성을 엿볼 수 있었다. 2016-17 시즌부터는 연달아 리그 4위까지 끌어올리면서 팀을 다시 챔피언스 리그 무대에 복귀시키는데 성공하였고, 2017-18 시즌에 오랜만에 복귀한 챔피언스 리그에서 단번에 결승까지 오르는 저력을 보여주었다. 2018-19 시즌에는 한층 발전하여 리그 2위를 거두고 14년 만에 UEFA 챔피언스 리그 우승을 차지, 통산 6번째 빅 이어를 안겨주며 기어이 팀을 다시금 유럽 정상의 자리에 올려놓았다. 여기에 2019-20 시즌에는 마침내 서포터들의 간절한 염원이던 30년 만에 프리미어 리그 첫 우승이자, 1부 리그 통산 19번째 금자탑을 쌓는데 성공했답니다.
이 외에도 UEFA 슈퍼컵, FIFA 클럽 월드컵에서 연달아 우승을 차지하며, 잉글랜드 클럽 최초로 한 해에 챔피언스 리그 - 슈퍼컵 - 클럽 월드컵을 석권하는 컨티넨탈 트레블을 달성하기도 했다. 게다가 자국 컵 대회인 FA컵, EFL컵, FA 커뮤니티 실드마저 우승을 거두면서, 리버풀 역사상 최초로 메이저 대회를 모두 제패한 감독에 올라서게 됐답니다.
클롭은 리버풀을 길었던 암흑기 탈출을 넘어 유럽의 강호들조차도 상대하기 꺼리는 클럽으로 성장시켰고 사실상 '붉은 제국'의 새 전성기를 열어가기 시작했다고 평가받아도 과언이 아니다. 사실 정말로 암울한 상황이었던 리버풀을 부활시킨다는 것은 객관적으로 성공 확률이 상당히 낮은 도전이었음이 분명했다. 하지만 클롭은 이러한 리버풀에 확실하고 강력한 멘탈리티와 전술적 색채, 개성있는 팀 컬러를 부여해 불과 4년 만에 유럽 최고의 팀이자, 수많은 선수들이 열망하는 클럽으로 완전히 탈바꿈시키는 데에 성공했다. 클롭이 리버풀의 역사에 있어서 얼마나 큰 역할을 맡고 있는지를 알 수 있는 부분이랍니다.
- 감독 스타일
- 탁월한 선수 구성 능력
마인츠 시절에는 2006-07 시즌에 차두리를 영입한 적이 있는데, 클롭은 피지컬이 좋은 차두리를 오른쪽 풀백으로 전향시켜 차두리의 기량을 이끌어냈다. 원래 포지션이 스트라이커였던 케빈 그로스크로이츠도 윙어로 정착하게 하더니, 우카시 피슈체크가 장기부상을 입자 아예 풀백으로 기용했는데 이 시도도 성공적이었답니다.
게다가 분데스리가 유소년 레벨에서 유망한 스트라이커였던 에리크 두름도 풀백으로 포지션 전향을 시도하게 하여 1군에서 뛰게 했는데, 이 변화는 성공적이여서 결국 그로스크로이츠와 두름은 2014 FIFA 월드컵 브라질에서 독일 국가대표로 뽑히기까지 하였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클롭이 선수의 포지션 변경도 성공적으로 잘하게 해주는 감독이라는 인식이 생기게 되었답니다.
지동원 영입을 두고 도르트문트에서 했던 골 못 넣는 공격수를 키우는 재미도 쏠쏠하다는 농담에서도 볼 수 있듯이, 클롭은 부진했던 선수들에게 자신감을 부여하고 능력치의 한계를 끌어올리는 데에 있어 가장 훌륭한 감독 중 하나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피에르에메릭 오바메양이 A급 공격수로 도약할 수 있던 것도 그의 덕분이다. 본업은 공격형 미드필더였지만 윙어로 뛰며 리버풀 이적 초반에 매우 부진하던 호베르투 피르미누에게는 최전방 폴스 나인 역할을 부여하여 자신의 황태자로 만들어냈답니다.
클롭이 리버풀에 부임하자마자 가장 먼저 이루어낸 업적은 바로 피르미누를 비롯한 브렌던 로저스 체제 하에서 내리막 코스를 타던 선수들을 귀신같이 살려낸 것이라 할 수 있다. 연장을 탓하며 A급 선수 영입을 요구하던 로저스를 무안하게 만들 정도로 선수들의 경기력 향상은 가히 대단했다. 리버풀이 2016-17 시즌을 앞두고 영입에 쓴 돈은 겨우 £67M에 불과했다.[23] 심지어 판매로 £71M을 벌어들여 리그에서 사우스햄튼과 함께 유일하게 이적시장에서 흑자를 봤답니다.
본래 2선에서 뛰던 아담 랄라나를 2016-17 시즌에 들어선 4-3-3의 오른쪽 중앙 미드필더 자리에 기용했는데, 랄라나는 2선 자원치고는 주력과 돌파력이 부족한 모습을 보였기에 사디오 마네의 영입으로 입지가 흔들릴 수 있었으나 주력이 크게 중요하지 않은 중원에서 탁월한 활동량을 활용한 수비가담과 오프 더 볼, 2선 출신다운 볼키핑과 탈압박을 보여주며 공수 연결고리 역할을 확실하게 해주었다. 랄라나는 이 시즌에서의 활약으로 클롭의 무한한 신뢰를 얻게 되었다. 같은 시즌에 공격적인 2선 자원이었던 조르지뇨 바이날둠을 박스 투 박스 미드필더로 탈바꿈시키기도 했답니다.
수비 진영에서부터 1차 빌드업을 수행해줄 미드필더가 부족하자 이전까지 박스 투 박스 유형으로 플레이하던 조던 헨더슨을 수비적인 6번 롤로 전환시킨 것도 나름 성공적이었다. 비록 시행착오는 있었어도 이는 헨더슨의 기량 발전에 큰 도움이 되었는데, 6번 롤을 수행할 미드필더가 없던 당시 팀 상황에서 공수 전환이나 공격 시작점 역할을 소화하면서 본격적으로 패스에 눈을 떴고 수비력도 향상되는 효과를 보았다. 파비뉴가 18-19 시즌부터 합류함으로써 헨더슨은 원래 역할로 돌아갔지만 자리가 비는 경우엔 수비형 미드필더 역할을 맡습니다.
2017-18 시즌 전반기에는 높은 라인으로 인한 수비 불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조 고메즈를 라이트백으로 활용하여 센터백 둘과 함께 변형 쓰리백을 형성시켜 효과를 보기도 했고, 주로 측면에서 활약하던 선수임에도 본인이 중앙 미드필더로 뛰고 싶어했던 알렉스 옥슬레이드체임벌린 역시 축구지능과 시야의 문제로 부정적인 견해가 대부분이었으나 탁월한 전진력과 발전한 파이널 패스 선택 능력, 강력한 중거리슛으로 큰 부상을 당하기 전까지는 리버풀 중원의 필요 자원으로 발돋움했었답니다.
베테랑 제임스 밀너의 활약 또한 매우 인상적인데, 밀너의 경우 로저스에 의해 리버풀에서 중앙 미드필더로 뛰기로 약속받았지만 클롭의 부임 이후엔 두 시즌간 다른 포지션으로 뛰어야 했다. 첫 시즌에는 주로 왼쪽 오른쪽 가리지 않고 윙어로 기용되며[24] 20개가 넘는 공격포인트를 기록했고, 두번째 시즌 땐 레프트백으로 포지션을 옮겨 시즌 내내 안정적인 수비를 보여주며 맹활약하였다. 그리고 세번째 시즌에 드디어 중앙 미드필더로 돌아왔는데, 전반기에는 로테이션으로 활약하다가 후반기에는 거의 붙박이 주전으로 출장하며 중원의 핵심으로 도약했다. 아예 UEFA 챔피언스 리그에서는 역대 한 시즌 최다 어시스트 횟수인 9도움을 기록하며 노장의 클래스를 보여주기도 하였답니다.
이후에도 20-21 시즌 센터백 줄부상 사태에는 파비뉴와 조던 헨더슨을 센터백으로 세우며 임시 방편을 훌륭하게 세웠고, 21-22 시즌에는 본래 윙어로 중용되던 디오구 조타나 사디오 마네를 중앙 공격수로 포지션을 변경시켜 경기력을 상승시키는 등 여전한 포변 능력을 보여주고 있답니다.
- 선수 영입
제한된 자원을 가지고 선수단을 꾸리는 데 상당히 능한 편인데, 도르트문트 시절에 레반도프스키, 피슈첵, 카가와, 벤더, 귄도간, 훔멜스, 수보티치 같은 흙 속의 진주들을 엄청나게 싼 값에 데려왔다. 각 포지션에 필요한 선수들을 모두 알맞게 영입했다는 점에서 굉장한 수완을 가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열악한 상황에서도 팀을 꾸려서 부활시키는 데에 그야말로 도가 튼 인물이랍니다.
리버풀에서 처음으로 여름 이적시장을 맞이한 16-17 시즌에 자유계약으로 조엘 마티프를, 4m으로 라그나르 클라반을 영입하고 사디오 마네 영입으로 2선에서 밀려날 것 같았던 제임스 밀너를 왼쪽 풀백으로 돌리면서 고작 4m의 헐값으로 수비진의 퀄리티를 높였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