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버풀 위르겐 클롭 감독 연봉 재계약 나이 키 프로필 국적

2022. 8. 20. 11:21카테고리 없음

- 클롭 감독의 2023년 시즌 연봉은??

 위르겐 클롭 리버풀 감독은 본인보다 코칭스태프를 먼저 챙겼다.

리버풀은 2022년 4월 29일(한국시간) “클롭 감독과 재계약을 체결했다. 계약 기간은 2024년까지”라고 공식 발표했다. 이로써 클롭 감독은 2015년 10월에 부임한 이래로 약 10년간 리버풀 벤치를 지킬 전망이다. 또한 현직 프리미어리그 감독 중 최장수 기록을 이어간답니다.


영국 ‘디 애슬레틱’의 데이비드 온스테인 기자가 클롭 재계약 비하인드 스토리를 들려줬다. 온스테인 기자는 “리버풀과 클롭 감독의 재계약은 속전속결로 진행됐다. 클롭은 자신의 에이전트에게 존 헨리 구단주와 연락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리곤 연봉 인상 없이 빨리 재계약을 맺고 싶다고 말했다. 곧바로 제계약이 체결됐다”고 전했다.

클롭 감독이 원하는 건 자신을 보좌하는 코칭스태프들의 연봉을 올리는 것이었다. 온스테인 기자는 “클롭 감독은 재계약을 맺으면서 코칭스태프들의 연봉을 인상해달라고 요청했다. 이번 계약으로 코칭스태프 연봉이 총 200만 파운드(약 31억 6천만 원) 올랐다”고 덧붙였답니다.

리버풀과 10년 동행을 보장받은 클롭 감독은 “지금 내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단어가 너무 많다. 기쁘고, 영광스럽고, 흥분되고, 특권을 누리는 느낌”이라면서 “이곳 리버풀을 사랑하는 마음이 정말 크다. 리버풀에 오기 전부터 그 마음이 있었는데, 오고 나서 더욱 커졌다. 앞으로도 더욱 더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클롭 감독은 리버풀 지휘봉을 잡고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잉글랜드 리그컵,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UEFA 슈퍼컵, 국제축구연맹(FIFA) 클럽월드컵에서 1회씩 우승했다. 올 시즌에는 이미 리그컵 우승을 확정했으며, FA컵 결승에도 진출했다. 챔피언스리그에서는 4강 1차전에서 2-0 승리를 거둬 결승행이 유력하다. 프리미어리그 역시 치열한 우승 경쟁 중이다. 최대 4관왕까지 노려볼 수 있답니다.

- 클롭 감독 프로필 경력 이력

본명 이름
위르겐 노르베르트 클로프
출생 나이
1967년 6월 16일 (55세)
고향 출생지
서독 바덴뷔르템베르크주 슈투트가르트

국적
독일
신체 키 몸무게
키 193cm / 체중 83kg
종교
개신교(루터회)

소속
선수
SV 글라텐 (1975~1983 / 유스)
TuS 에르겐징겐 (1983~1987 / 유스)
1. FC 포르츠하임 (1987)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 (1987~1988)
빅토리아 진들링겐 (1988~1989)
로트바이스 프랑크푸르트 (1989~1990)
1. FSV 마인츠 05 (1990~2001)

감독
1. FSV 마인츠 05 (2001~2008)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2008~2015)
리버풀 FC (2015~)

- 선수 경력

FSV 마인츠 05에서 11년 간 선수 생활을 했으며, 처음은 스트라이커였다가 28살 때 수비수로 전향했다고 한다. 비록 위르겐 클린스만 같은 화려한 선수 생활은 아니었지만 나름 밥값 하는 선수였던 듯. 수비수로 전향한 후에도 공격수 출신답게 종종 원더골을 보여주었다.

본인의 표현을 쓰자면 "기술적 역량은 5부 리그 수준, 전술적 이해도는 1부 리그 수준, 그래서 총합 2부 리그 수준의 축구선수"였다고 한다.# 그리고 정말로 2부 리그 마인츠에서 11시즌을 뛰면서 은퇴했다. 워낙 오래 뛰어서 이래 봬도 마인츠 구단 역대 득점 3위다.


2000-01 시즌 후반기, 성적 악화로 감독 자리가 공석이 되자 구단은 선수로 뛰며 훌륭한 리더쉽과 전술 이해도를 보인 클롭에게 선수 겸 감독이 되어달라는 모험을 제안하였고, 클롭은 두 일을 병행하면 이도 저도 안 될 것 같다고 생각했기에 아예 선수 생활 은퇴를 선언, 코칭 경험도 없었던 34살의 젊은 나이에 감독 커리어를 시작하게 되었답니다.

- 감독 경력

- FSV 마인츠 05

2000-01 시즌 후반기 중에 감독으로 부임한 클롭은 첫 7경기에서 무려 6승을 거두며 팀을 14위까지 끌어올렸고, 결국 3부 리그로 강등당할 위기에 처했던 마인츠를 가까스로 구해내는 데에 성공하였다.[6] 선수 시절 자신을 지도했던 은사 볼프강 프랑크의 영향을 받은 클롭은 첫 풀시즌인 01-02 시즌부터 본격적으로 유기적인 움직임과 강력한 압박을 요하는 축구 철학을 마인츠에 녹여내기 시작하였다.

그 결과, 분데스리가 2부 리그에서도 중하위권을 맴돌던 마인츠를 14위에서 무려 4위까지 단번에 끌어올렸고 1부 리그 승격까지 도전했으나 승점 단 1점 차로 아쉽게 고배를 마셔야 했다. 다음 02-03 시즌에는 그보다 더한 골득실 단 1골 차로...

하랄트 슈트루츠 마인츠 회장의 말에 따르면 당시 승격에 실패한 후, 클롭의 눈에는 눈물이 가득했으나 딱 하루 뒤, 선수단과 함께 팬들 앞에 서서 다시 일어날 것이며 절대로 무너지지 않는다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신인 감독이 겪기엔 가혹할 정도의 멘탈이 나갈 법한 암울한 상황에서도 클롭은 절대 포기하지 않았고, 끝내 03-04 시즌 세 번의 도전 끝에 마인츠 창단 역사상 99년 만에 첫 1부 리그 승격에 성공하였다.


분데스리가 승격 이후 중위권의 성적까지 하고 페어플레이 1위로 UEFA컵에 출전했을 때도 토너먼트까지 진출하며[7] 순항했던 마인츠는 승격 세번째 시즌이었던 06-07 시즌에 16위의 저조한 성적을 거두고 결국 강등당하고 만다.[8] 클롭은 마인츠에 남았으나 07-08 시즌에 마인츠가 아쉽게 승격에 실패하자, 자진 사임의 뜻을 밝혔다.

그렇게 선수로 11년, 감독으로 7년 무려 18년을 몸담으며, 마인츠에서 하나의 상징과 같았던 클롭은 모든 책임을 짊어지고 클럽을 떠났다. 이 때까지만 해도 클롭은 그저 '유망한 젊은 감독' 정도였답니다.

-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2007-08 시즌에 리그 13위까지 추락했던 보루시아 도르트문트가 40세에 불과한 클롭에게 러브콜을 날렸다. 원래 분데스리가 전통적인 명문 클럽이던 도르트문트는 지난 수 년간 극심한 부진 끝에 중위권을 겨우 맴도는 수준이었고, 예전의 영광은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는 2003년부터 시작된 재정난 때문으로, 도르트문트는 같은 리그의 바이에른 뮌헨에게까지 돈을 빌려야 했을 정도로 극심한 상황에 시달리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은 앞으로 도르트문트는 그저 그런 중위권 팀에 머물 것이라고 예측했고, 실제로 당시의 부진한 기록은 그것을 증명해주고 있었다.

클롭은 이런 도르트문트의 감독으로 부임하자마자 대대적인 리빌딩에 돌입하였다. 일명 클롭식 알짜 영입이라고 불리었는데, 팀의 어려운 재정에 맞춰 그에 맞게 가성비 좋은 알짜배기 선수들을 영입하기 시작했다.

부임 첫 해에 펠리페 산타나, 이영표, 네벤 수보티치 등을 도합 800만 유로도 안되는 가격에 데려온 것을 시작으로 리그 6위를 차지하며 가능성을 보인 클롭은, 그 다음 시즌에 향후 도르트문트 부활의 주축이 되는 마츠 후멜스, 스벤 벤더, 케빈 그로스크로이츠, 루카스 바리오스를 모두 합쳐 약 1000만 유로로 영입해 리그 5위까지 기록했다. 이전보다 눈에 띄게 향상된 경기력과 높아진 순위에 독일 언론사들은 모두 클롭이라는 젊은 감독에게 주목하기 시작했고, 그의 노력은 점점 결실을 맺어가고 있었답니다.

부임 세 번째 시즌인 2010-11 시즌, 클롭은 팀의 믿음직스러운 풀백이 된 우카시 피슈첵을 이적료 한 푼 없이 영입했고, 카가와 신지를 단돈 50만 유로에 영입했다. 이뿐만 아니라 유스팀에서 주목할 만한 활약을 선보이던 마리오 괴체를 1군으로 불러들였으며, 지금까지도 클롭 최고의 영입이라고 일컬어지는 로베르트 레반도프스키를 폴란드 리그에서 약 450만 유로라는 매우 싼 가격으로 영입했다. 이 4명의 선수들은 이적해 온 첫 해부터 엄청난 활약을 선보였고, 이른바 센세이션을 일으키게 된다. 이러한 폭풍 활약을 바탕으로 도르트문트는 꿈에 그리던 분데스리가 마이스터샬레를 9년 만에 들어올렸답니다.

2011-12 시즌, 팀의 핵심 미드필더였던 누리 샤힌의 레알 마드리드 이적으로 인한 전력 손실이 우려됐으나 일카이 귄도안을 싼 값에 영입하여 공백을 메꾸었고, 결국 리그 초반의 부진을 씻어내며 28경기 연속 무패 행진[9]을 내달렸다. 그 결과, 승점 81점을 쌓으며 당시 분데스리가 최다 승점 신기록까지 갈아치우는데 성공, 분데스리가 2연패의 위업을 달성하게 된다. 게다가 포칼컵 결승에서도 바이에른 뮌헨에게 5:2 완승을 거둬 23년 만에 DFB-포칼 우승을 맛봤고, 끝내 클롭은 도르트문트 구단 역사상 최초의 더블까지 이룩하였다.

한편 클롭의 영입과 육성을 통해 성장한 주축 선수들의 엄청난 활약은 꿀벌 군단에게 양날의 검이 되기도 했는데, 마리오 괴체와 카가와 신지, 로베르트 레반도프스키 등의 활약상이 워낙 센세이셔널해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바이에른 뮌헨, 레알 마드리드 등 빅클럽들의 주목을 잔뜩 끌게 되었기 때문이다. 결국 지난 시즌 누리 샤힌에 이어, 또 다시 팀의 핵심이었던 카가와 신지를 맨유로 보내게 되면서 전력에 큰 차질이 생길 듯 했으나, 클롭은 보란듯이 공백을 잘 메워냈다.

2012-13 시즌,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의 에이스이자 유로 2012에서 좋은 활약을 선보인 마르코 로이스를 영입하며 한 층 더 강력해진 라인업을 구축하는데 성공했다. 카가와 신지의 이적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엄청난 경기력으로 상대를 압도하는 모습을 보여, 분데스리가에서 상위권을 유지하였다. 특히 챔스에서는 레반도프스키, 마리오 괴체, 마르코 로이스의 말도 안 되는 활약을 바탕으로 죽음의 D조에서 레알 마드리드, 맨체스터 시티, 아약스를 꺾고 총 4승 2무를 기록하며 당당히 조 1위로 16강 토너먼트에 진출하였답니다.

이후 16강에서 샤흐타르 도네츠크, 8강에서 말라가를 차례로 꺾었고 4강에서 다시 만난 무리뉴의 레알 마드리드를 합계 스코어 4-3으로 또 무너뜨리는 충격적인 결과물을 만들어내며, 16년 만에 UEFA 챔피언스 리그 결승 진출까지 이뤄내었다. 공교롭게도 결승전에서 만난 상대는 FC 바르셀로나를 처참히 무찌르고 올라온 바이에른 뮌헨. 챔스 결승전에서 팀의 주축인 마리오 괴체가 부상으로 출전하지 못하는 불리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로만 바이덴펠러와 마누엘 노이어가 미친 듯한 선방 대결을 보여주며 엄청난 명승부를 펼쳤다. 하지만 결국 경기 막판에 아르연 로번에게 결승골을 실점하여 아쉽게 1-2로 패배하고 말았고, 더불어 리그에서도 바이에른에 밀려 준우승을 기록했답니다.


지난 시즌 도중 역대급 통수 마리오 괴체가 바이에른 뮌헨으로의 이적을 확정 지음에 따라, 또 다시 전력에 큰 난항을 겪게 된 클롭의 도르트문트는 2013-14 시즌을 앞두고 헨리크 미키타리안, 피에르에메릭 오바메양 등을 영입하면서 전력을 보강하였다. 시즌 전초전인 DFL-슈퍼컵에서 과르디올라의 바이에른 뮌헨을 4-2로 꺾어내며 우승을 차지, 기분 좋게 시즌을 시작하였다. 도르트문트는 리그 초반에 좋은 경기력을 선보였지만, 막강한 자금력과 유럽에서도 손꼽히는 스쿼드를 갖춘 바이에른의 기세를 꺾기엔 역부족이었답니다.

게다가 리그 초중반부터 시작된 주축 선수들의 줄부상과 각종 악재들이 겹쳐 레버쿠젠에게 2위 자리마저 내주고 말았다. 그러나 휴식기를 지나고 주전들이 복귀하자마자 경기력을 다시 끌어 올리면서 리그 2위를 되찾았다. 그리고 벌어진 시즌 두 번째 데어 클라시커에서 바이에른을 3:0으로 털어버렸다. 클롭의 전술적 역량을 다시 확인하게 된 장면. 하지만 결국 리그는 2위로 마쳤고, DFB-포칼에서 바이에른에게 0-2로 패배하면서 2년 연속 준우승 더블을 하고 말았다. 그러나 마리오 괴체를 시즌 시작도 하기 전에 뺏기고, 팀의 주포인 로베르트 레반도프스키가 시즌 도중 보스만 룰로 바이에른 이적을 확정지었으며, 심지어는 시즌 내내 포백이 박살나는 부상 병동 속에서 이러한 성과를 낸 것은 매우 훌륭한 성과임은 부정할 수 없답니다.

매년 팀의 핵심 선수들이 빅클럽으로 이적을 하는 암울한 상황을 겪었지만, 클롭은 그 공백을 오버페이 없이 적절한 선수 영입 및 육성을 통해 잘 메워갔고 또 분명히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둬왔는데, 2014-15 시즌은 골잡이 레반도프스키의 공백을 메우는 것이 가장 큰 관건이었다. DFL-슈퍼컵에서 작년에 이어 다시 한번 바이에른을 꺾고 슈퍼컵 2연패를 차지하며 시즌을 기분 좋게 시작했지만, 정작 리그가 시작되자 큰 부진에 빠지는 모습을 보였답니다.

일단 지동원, 아드리안 라모스, 치로 임모빌레 등 괜찮은 자원들을 많이 데려왔지만 적응 실패 등으로 인해 전혀 효과를 보지 못했으며, 이전에 뛰어난 활약을 보였던 카가와 신지를 다시 데려왔음에도 예전의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다. 아스날과의 챔피언스 리그 경기에서 특유의 게겐 프레싱으로 다시 엄청난 경기력을 보여주었으나, 리그에서는 계속된 부진을 겪어 하위권을 맴돌았다. 주축 선수들의 이탈과 마르코 로이스, 마츠 후멜스, 일카이 귄도안 같은 핵심 선수들의 장기 부상 및 후유증으로 인한 컨디션 저하 그리고 헨리크 미키타리안, 아드리안 라모스와 치로 임모빌레의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는 부진이 큰 원인이었답니다.


챔스에서는 게겐 프레싱에 상대적으로 익숙치 않은 팀들을 압살하는 경기력을 보여주지만, 분데스리가의 팀들은 위르겐 클롭의 전술에 이미 익숙한데다 파훼법을 발견했기에 별로 재미를 보지 못했다. 2013-14 시즌까지는 경기력이 좋지 않더라도 어떻게든 로베르트 레반도프스키의 사기적인 결정력으로 승점을 벌어오는 경우가 많았는데, 레반도프스키의 이탈로 공격력이 확연히 줄어들면서 승점 챙기기에 실패한다는 것이 문제였다. 이러한 복합적인 요인으로 도르트문트는 전반기에 17위까지 쳐지는 최악의 상황을 겪었으나, 후반기에 경기력을 어느정도 수습하여 결국 7위로 리그를 마무리하였답니다.

그러던 중 2015년 4월 15일, 2014-15 시즌을 끝으로 클롭이 자진 사임하여 도르트문트 지휘봉을 내려 놓는다는 소식이 나왔다. 후임으로는 토마스 투헬 전 마인츠 감독이 내정되었다.[12] 물론 일시적으로 성적 저하가 오긴 했지만, 그동안 도르트문트의 열악한 상황 속에서 엄청난 성과를 쌓아온 클롭에 대한 믿음이 여전히 있었기에, 도르트문트 팬들은 그의 자진 사임 소식에 큰 슬픔과 충격에 빠졌답니다.

클롭은 최근 들어 자신이 더 이상 도르트문트에 완벽한 감독이라는 답을 스스로 할 수 없었고, 팀에 변화가 필요하다고 판단했으며 지금이 바로 새 계획을 세울 적절한 순간이라 생각했다고 인터뷰를 통해 밝혔다. 또 팀보다 위대한 존재는 없기에, 한 사람의 존재가 너무 커져서 과거의 영광에 팀이 안주하는 것을 보고싶지 않았다고 덧붙였답니다.

그렇게 클롭은 도르트문트에서의 길었던 7년 감독직을 마무리하였다. 그는 2000년대 들어서 분데스리가는 무조건 바이에른의 우승이라는 공식을 깨뜨렸고, 무너져가던 꿀벌 군단을 다시 부활시켰을 뿐만 아니라 특출난 선수 구성 능력과 육성을 바탕으로 게겐프레싱이란 특유의 전술적 색채까지 이식하였다. 이 성과는 결코 분데스리가에서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고, 유럽대항전에서 유럽의 강호들과 겨뤄도 승리할 수 있다는 믿음을 안겨주었다. 그 결과 클롭의 도르트문트는 분데스리가 2회 우승, 챔피언스 리그 준우승, DFB 포칼 우승 등의 커리어를 쌓으며 유럽 전체에서도 인정받는 클럽으로 다시금 도약할 수 있었다. 동시에 그 역시 더 이상 젊고 유망한 감독만이 아닌 명장의 반열에 올라선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2015년 5월 31일, 볼프스부르크와의 DFB-포칼 결승전 직전에 클롭의 고별식이 이루어졌답니다.

- 리버풀 FC

도르트문트를 부활시킨 클롭에게 이번엔 또 다른 과거의 명가가 손을 건넸다. 2010년대에 들어 리버풀은 거의 매년 유로파권에만 맴돌았고, 과거에 유럽을 호령하던 그 위상은 이미 곤두박질쳐버린 상태였다] 국내, 해외를 막론하고 라이벌 팬들의 조롱거리로 전락했고, 팀 컬러나 전술적 특징도 전무했으며 나름 이름 좀 날린다는 선수들은 입단하기를 꺼렸던, 그야말로 우울한 암흑기 그 자체였다. 연이은 감독 교체의 실패로 유구한 역사를 뒤로한 채 정말 중위권 클럽의 위상으로 전락할 위기에 처한 리버풀에게 클롭은 최후의 한 수이자 마지막 희망이었답니다.

그리고 이러한 기대에 부응이라도 하듯, 클롭은 리버풀을 서서히 부활시켜 나갔다. 2015-16 시즌에 중도 부임하여 처음에는 리그 8위에 머물렀지만 UEFA 유로파 리그 결승까지 올라가는 등 가능성을 엿볼 수 있었다. 2016-17 시즌부터는 연달아 리그 4위까지 끌어올리면서 팀을 다시 챔피언스 리그 무대에 복귀시키는데 성공하였고, 2017-18 시즌에 오랜만에 복귀한 챔피언스 리그에서 단번에 결승까지 오르는 저력을 보여주었다. 2018-19 시즌에는 한층 발전하여 리그 2위를 거두고 14년 만에 UEFA 챔피언스 리그 우승을 차지, 통산 6번째 빅 이어를 안겨주며 기어이 팀을 다시금 유럽 정상의 자리에 올려놓았다. 여기에 2019-20 시즌에는 마침내 서포터들의 간절한 염원이던 30년 만에 프리미어 리그 첫 우승이자, 1부 리그 통산 19번째 금자탑을 쌓는데 성공했답니다.

이 외에도 UEFA 슈퍼컵, FIFA 클럽 월드컵에서 연달아 우승을 차지하며, 잉글랜드 클럽 최초로 한 해에 챔피언스 리그 - 슈퍼컵 - 클럽 월드컵을 석권하는 컨티넨탈 트레블을 달성하기도 했다. 게다가 자국 컵 대회인 FA컵, EFL컵, FA 커뮤니티 실드마저 우승을 거두면서, 리버풀 역사상 최초로 메이저 대회를 모두 제패한 감독에 올라서게 됐답니다.

클롭은 리버풀을 길었던 암흑기 탈출을 넘어 유럽의 강호들조차도 상대하기 꺼리는 클럽으로 성장시켰고 사실상 '붉은 제국'의 새 전성기를 열어가기 시작했다고 평가받아도 과언이 아니다. 사실 정말로 암울한 상황이었던 리버풀을 부활시킨다는 것은 객관적으로 성공 확률이 상당히 낮은 도전이었음이 분명했다. 하지만 클롭은 이러한 리버풀에 확실하고 강력한 멘탈리티와 전술적 색채, 개성있는 팀 컬러를 부여해 불과 4년 만에 유럽 최고의 팀이자, 수많은 선수들이 열망하는 클럽으로 완전히 탈바꿈시키는 데에 성공했다. 클롭이 리버풀의 역사에 있어서 얼마나 큰 역할을 맡고 있는지를 알 수 있는 부분이랍니다.

- 감독 스타일

- 탁월한 선수 구성 능력

마인츠 시절에는 2006-07 시즌에 차두리를 영입한 적이 있는데, 클롭은 피지컬이 좋은 차두리를 오른쪽 풀백으로 전향시켜 차두리의 기량을 이끌어냈다. 원래 포지션이 스트라이커였던 케빈 그로스크로이츠도 윙어로 정착하게 하더니, 우카시 피슈체크가 장기부상을 입자 아예 풀백으로 기용했는데 이 시도도 성공적이었답니다.

게다가 분데스리가 유소년 레벨에서 유망한 스트라이커였던 에리크 두름도 풀백으로 포지션 전향을 시도하게 하여 1군에서 뛰게 했는데, 이 변화는 성공적이여서 결국 그로스크로이츠와 두름은 2014 FIFA 월드컵 브라질에서 독일 국가대표로 뽑히기까지 하였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클롭이 선수의 포지션 변경도 성공적으로 잘하게 해주는 감독이라는 인식이 생기게 되었답니다.

지동원 영입을 두고 도르트문트에서 했던 골 못 넣는 공격수를 키우는 재미도 쏠쏠하다는 농담에서도 볼 수 있듯이, 클롭은 부진했던 선수들에게 자신감을 부여하고 능력치의 한계를 끌어올리는 데에 있어 가장 훌륭한 감독 중 하나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피에르에메릭 오바메양이 A급 공격수로 도약할 수 있던 것도 그의 덕분이다. 본업은 공격형 미드필더였지만 윙어로 뛰며 리버풀 이적 초반에 매우 부진하던 호베르투 피르미누에게는 최전방 폴스 나인 역할을 부여하여 자신의 황태자로 만들어냈답니다.


클롭이 리버풀에 부임하자마자 가장 먼저 이루어낸 업적은 바로 피르미누를 비롯한 브렌던 로저스 체제 하에서 내리막 코스를 타던 선수들을 귀신같이 살려낸 것이라 할 수 있다. 연장을 탓하며 A급 선수 영입을 요구하던 로저스를 무안하게 만들 정도로 선수들의 경기력 향상은 가히 대단했다. 리버풀이 2016-17 시즌을 앞두고 영입에 쓴 돈은 겨우 £67M에 불과했다.[23] 심지어 판매로 £71M을 벌어들여 리그에서 사우스햄튼과 함께 유일하게 이적시장에서 흑자를 봤답니다.

본래 2선에서 뛰던 아담 랄라나를 2016-17 시즌에 들어선 4-3-3의 오른쪽 중앙 미드필더 자리에 기용했는데, 랄라나는 2선 자원치고는 주력과 돌파력이 부족한 모습을 보였기에 사디오 마네의 영입으로 입지가 흔들릴 수 있었으나 주력이 크게 중요하지 않은 중원에서 탁월한 활동량을 활용한 수비가담과 오프 더 볼, 2선 출신다운 볼키핑과 탈압박을 보여주며 공수 연결고리 역할을 확실하게 해주었다. 랄라나는 이 시즌에서의 활약으로 클롭의 무한한 신뢰를 얻게 되었다. 같은 시즌에 공격적인 2선 자원이었던 조르지뇨 바이날둠을 박스 투 박스 미드필더로 탈바꿈시키기도 했답니다.

수비 진영에서부터 1차 빌드업을 수행해줄 미드필더가 부족하자 이전까지 박스 투 박스 유형으로 플레이하던 조던 헨더슨을 수비적인 6번 롤로 전환시킨 것도 나름 성공적이었다. 비록 시행착오는 있었어도 이는 헨더슨의 기량 발전에 큰 도움이 되었는데, 6번 롤을 수행할 미드필더가 없던 당시 팀 상황에서 공수 전환이나 공격 시작점 역할을 소화하면서 본격적으로 패스에 눈을 떴고 수비력도 향상되는 효과를 보았다. 파비뉴가 18-19 시즌부터 합류함으로써 헨더슨은 원래 역할로 돌아갔지만 자리가 비는 경우엔 수비형 미드필더 역할을 맡습니다.

2017-18 시즌 전반기에는 높은 라인으로 인한 수비 불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조 고메즈를 라이트백으로 활용하여 센터백 둘과 함께 변형 쓰리백을 형성시켜 효과를 보기도 했고, 주로 측면에서 활약하던 선수임에도 본인이 중앙 미드필더로 뛰고 싶어했던 알렉스 옥슬레이드체임벌린 역시 축구지능과 시야의 문제로 부정적인 견해가 대부분이었으나 탁월한 전진력과 발전한 파이널 패스 선택 능력, 강력한 중거리슛으로 큰 부상을 당하기 전까지는 리버풀 중원의 필요 자원으로 발돋움했었답니다.

베테랑 제임스 밀너의 활약 또한 매우 인상적인데, 밀너의 경우 로저스에 의해 리버풀에서 중앙 미드필더로 뛰기로 약속받았지만 클롭의 부임 이후엔 두 시즌간 다른 포지션으로 뛰어야 했다. 첫 시즌에는 주로 왼쪽 오른쪽 가리지 않고 윙어로 기용되며[24] 20개가 넘는 공격포인트를 기록했고, 두번째 시즌 땐 레프트백으로 포지션을 옮겨 시즌 내내 안정적인 수비를 보여주며 맹활약하였다. 그리고 세번째 시즌에 드디어 중앙 미드필더로 돌아왔는데, 전반기에는 로테이션으로 활약하다가 후반기에는 거의 붙박이 주전으로 출장하며 중원의 핵심으로 도약했다. 아예 UEFA 챔피언스 리그에서는 역대 한 시즌 최다 어시스트 횟수인 9도움을 기록하며 노장의 클래스를 보여주기도 하였답니다.

이후에도 20-21 시즌 센터백 줄부상 사태에는 파비뉴와 조던 헨더슨을 센터백으로 세우며 임시 방편을 훌륭하게 세웠고, 21-22 시즌에는 본래 윙어로 중용되던 디오구 조타나 사디오 마네를 중앙 공격수로 포지션을 변경시켜 경기력을 상승시키는 등 여전한 포변 능력을 보여주고 있답니다.

- 선수 영입

제한된 자원을 가지고 선수단을 꾸리는 데 상당히 능한 편인데, 도르트문트 시절에 레반도프스키, 피슈첵, 카가와, 벤더, 귄도간, 훔멜스, 수보티치 같은 흙 속의 진주들을 엄청나게 싼 값에 데려왔다. 각 포지션에 필요한 선수들을 모두 알맞게 영입했다는 점에서 굉장한 수완을 가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열악한 상황에서도 팀을 꾸려서 부활시키는 데에 그야말로 도가 튼 인물이랍니다.

리버풀에서 처음으로 여름 이적시장을 맞이한 16-17 시즌에 자유계약으로 조엘 마티프를, 4m으로 라그나르 클라반을 영입하고 사디오 마네 영입으로 2선에서 밀려날 것 같았던 제임스 밀너를 왼쪽 풀백으로 돌리면서 고작 4m의 헐값으로 수비진의 퀄리티를 높였답니다.


17-18 시즌 여름 이적시장에선 수비에 대한 계속되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원하는 선수가 아니면 영입하지 않는다는 확고한 뜻을 계속해서 내보이며 결국 중앙 수비수 영입을 하지 않은 채 시즌 시작을 맞이했다. 이로 인해 의외로 쓸데없는 고집을 부릴 때가 있다는 부정적인 평가들도 많이 나왔지만 그럼에도 클롭은 반 다이크만한 선수를 찾을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답니다.

그래도 2017년 여름에 리버풀로 이적한 모하메드 살라, 앤드루 로버트슨, 알렉스 옥슬레이드체임벌린은 입단 당시만 해도 따가운 눈총을 받았지만 이내 팀 내에서 핵심적인 멤버들로 자리매김했다. 특히 로마에서 데려온 살라는 리버풀에서 세계 최고의 축구스타들 중 한 명이 되었답니다.

그리고 반 년의 기다림 끝에 리버풀은 겨울 이적시장에 클럽 레코드와 역대 수비수 최고액 기록을 깨는 75m이라는 거금을 들여 버질 반 다이크 영입에 성공하였다. 다만 수비수치고는 너무나도 비싼 이적료 탓에 클롭은 반다이크 영입에 부정적인 입장이었던 모양이다. 오히려 보드진이 이 정도 수비수가 그 금액이면 바겐세일이라고 클롭을 설득한 모양이랍니다.

18-19 시즌에 들어서도 특유의 영입 수완은 여전해서 검증된 미드필더인 파비뉴를 품는 데에 성공했으며, 그동안 약점으로 꼽히던 골키퍼 자리를 알리송 베케르의 영입을 통해 메꾸며 화려한 스쿼드를 구축했다. 이적료가 전혀 쌌다고는 얘기할 수 없지만, 이 모든 돈을 2000억원이라는 쿠티뉴의 바르셀로나 이적료로 커버가 가능했기 때문에 넷스펜딩만 보면 효율적이고 클롭 특유의 영입 수완이 잘 드러났다 할 수 있다.

20-21 시즌에는 바이에른에서 월드클래스 미드필더 티아고 알칸타라를 영입해 여전한 수완을 보여주었고, 영입 당시 너무 비싸게 사는 거 아니냐는 비판을 받은 공격수 디오구 조타도 빠르게 팀에 적응시키며 자신의 선수 보는 눈이 여전함을 증명했다.

21-22 시즌에는 이전 시즌 승점을 1년 내내 갉아먹은 수비진 뎁스를 강화하고자 이브라히마 코나테를 영입하였으나 코나테 역시 기존 선수들처럼 큰 부상 전력이 있는 관계로 팬들이 살짝 동요하기도 했지만, 오히려 조엘 마티프와 코나테가 모두 서로의 강화재료가 되었는지 매우 단단한(!) 한 해를 보내며 시즌 컵 더블에 크게 공헌했다. 겨울에는 루이스 디아스가 영입되자마자 폭발적인 활약을 보여주며 리버풀의 새로운 주전 윙어로 발돋움했다.

결국 클롭이 영입한 선수들은 스쿼드의 핵심이 되어 팀의 성공에 공헌하였다. 카리우스, 그루이치, 케이타 같은 실패작도 있고 미나미노, 샤키리, 체임벌린 같은 애매한 케이스도 있지만 케이타, 샤키리, 체임벌린도 결정적인 순간 한 건씩 해준 적이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클롭이 영입한 대부분의 선수들은 결국엔 최소한 중박 이상을 쳤다 할 수 있답니다.

이들은 이적 당시에는 가격 또는 기대치의 이유로 비판을 받았을지 몰라도 현재 시점에서 다시 본다면 싸게 산 선수들은 싸게 산대로 알짜배기 활약을 했고 비싼 선수들은 돈값을 하며 핵심 선수로 자리잡으며 너무나 효과적이고 적절한 선수 수급으로 결론지어졌다. 이는 부유한 리그인 프리미어리그 빅클럽들에서 특히나 빈번히 일어나는, 천문학적 이적료를 통한 영입이 제대로 된 효과를 보지 못하는 부작용과는 완전히 대조된다. 특히 라이벌 펩이 수비에만 무려 5000억을 쏟아붓고서야 겨우 수비진을 안정화시키고 있는 것과 반대로, 반 다이크 1명에만 1000억을 쓰고 나머지는 유스 육성이나 저가 영입으로 PL 최고의 4백을 구축한 점에서 더욱 두드러지는 장점이랍니다.

한편으로 클롭의 선수 영입 패턴에서는 적지 않은 선수들이 맞짱을 떠보고 클롭의 마음에 들어서 영입제의를 받고 합류하는 기묘한 케미가 관찰되고 있다. 일단 15-16 시즌 사우스햄튼 소속으로 리버풀을 엄청나게 골탕먹인 마네가 대표적이고, 그런 마네를 16-17 시즌에 사우스햄튼 전에서 효과적으로 막아낸 반 다이크가 바로 다음 여름부터 기나긴 염문설을 뿌리다 2018년 1월부로 팀에 합류했다. 로마의 알리송도 17-18 시즌 리버풀에게 챔피언스리그 4강에서 대량 실점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클롭의 간택을 받았으며, 미나미노 타쿠미 역시 19-20 시즌 잘츠부르크 소속으로 리버풀을 상대로 준수한 활약을 펼치며 클롭의 간택을 받았답니다.

21-22 시즌에는 전반기에 포르투 소속으로 리버풀과 격돌한 루이스 디아스를 업어와서 차기 주전 윙어로 낙점했고, 챔피언스리그 8강에서 코나테를 크게 애먹인 다르윈 누녜스도 시즌이 끝나자마자 리버풀로 합류했다. 이 때문에 일부 팬들은 상대팀의 누군가가 미쳐 날뛰어서 리버풀이 크게 고전하는 경기를 보면 그 상대 선수가 다음 시즌에 리버풀로 합류하지 않을까 하는 희한한 상상의 나래를 펼치기도 한다. 오죽하면 매번 리버풀 전 끝날 때마다 클롭과 화기애애한 케미를 연출한다고 손흥민의 리버풀 행 떡밥이 수년간 식지 않고 잊을만 하면 불타오를 정도인데, 이런 식으로 클롭과 눈이 맞아서 정말 리버풀에 영입된 선수가 여럿 있다보니 전세계의 리버풀 팬들은 매 경기마다 클롭이 상대팀 선수를 바라보는 마성의 눈빛에 주목하곤 한답니다.

- 뛰어난 전술적 역량

영입 능력과 육성뿐만 아니라 전술적인 능력도 굉장하다. 클롭은 큰 틀에서는 본인의 뚜렷한 철학을 유지하면서도 세부적으로 전술을 꾸준히 변화시키며 상대의 대응을 무력화시키는 데에 능한 감독이다.

우선 분데스리가 시절에는 역대 명감독들의 압박 전술을 참고하여 그 만의 게겐 프레싱 전술을 마인츠와 도르트문트에 접목시켰다. 모든 필드 플레이어가 1선부터 상대를 압박해서 들어가는 이 전술은 상대의 빌드업과 패스길 자체를 막아버리는 전술로서 당시 티키타카로 대표되는 점유율 및 빌드업 전술을 상대로 엄청나게 재미를 본 카운터 격 전술이 되었다. 또한 역으로 공격시에 공을 뺏길 경우 모든 필드 플레이어들이 공을 빼앗아 간 상대에게 압박을 전개해 3초 안에 볼을 뺏어 역습을 들어가며 점유율을 내주더라도 한방으로 이길 수 있는 필살 전술이 되었다. 이 압박 전술은 특히 강팀들의 진을 빼놨으며 클롭이 명장의 반열에 오르는 데에 큰 공헌을 했다.

물론 게겐 프레싱에도 약점은 있다. 수비라인을 높게 설정하고 전방위적인 압박을 가하기 때문에 상대가 역으로 노릴 수 있는 뒷공간이 열리게 된다. 상대팀이 내내 수비적으로 움츠리고 있다가 이 뒷공간을 터는 역습에 약한 것.[30] 또한 게겐 프레싱은 선수들에게 어마어마한 체력적 부담을 지게 하였고 결국 팀에 많은 부상자들을 낳게 했다. 이 결과, 도르트문트는 14-15 시즌 전반기에 강등권으로까지 추락하는 쓴맛을 맛봤다. 다행히도 후반기에는 부상자들이 복귀함에 따라 팀의 성적도 크게 올라갈 수 있었는데, 이 시즌에 클롭은 전술적 유연도가 떨어진다는 전문가들의 쓴소리를 들었답니다.

클롭이 전반기에 비판을 받은 이유는 게겐 프레싱이라는 전술 자체의 문제에 기인한 것이 아니라, 선수들의 줄부상으로 인해 게겐 프레싱이 정상적으로 가동될 수 없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전술적 보완 없이 계속 게겐 프레싱만을 밀고 나갔기 때문이었다. 게겐 프레싱 뿐만 아니라 어떠한 전술이라도 적합한 선수들을 이용해 이상적으로 가동하면 강력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당연하지만, 축구에서 늘 그런 완벽한 상황만은 나오지 않고 바로 그런 때에 감독의 전술적인 역량이 중요해진다. 스쿼드가 정상화된 후반기에 팀이 상향곡선을 그린 것만 봐도 안정적인 상태에서의 게겐 프레싱은 위협적이나, 그렇지 않은 상황에서 클롭의 대처 능력은 숙제로 남았었답니다.

이 게겐 프레싱의 위력과 단점은 리버풀 초기에도 발휘되었는데, 특히 16-17 시즌에 선수들의 체력이 남아돌던 전반기에는 승승장구했으나 선수들의 체력이 고갈되고 부상자가 늘어난 후반기에는 매우 애를 먹었다. 그리고 빠른 압박과 높은 라인 잡기로 인해 주로 라인을 많이 올리는 강팀들을 상대로는 좋은 성과를 얻었지만, 주로 라인을 내리고 롱패스로부터 시작되는 빠른 역습이나 세트피스를 이용한 공격을 선호하는 약팀들에게는 허무하게 패배하는 김빠지는 모습들이 나왔다. 아예 16-17 시즌에 빅6를 상대로는 무패를 기록했음에도[31] 중하위권 팀들에게는 쉽게 승점을 빼앗기는 모습을 보여주었답니다.

클롭이 변화를 보인 건 16-17 시즌 극후반기부터로, 선수들의 부상으로 인하여 게겐 프레싱을 도저히 쓸 수 없게 되자 전방위적인 압박을 버리고 늪축구를 사용하였다. 17-18 시즌에는 전방위적인 프레싱이 아닌 선수 한 두 명이 공을 가진 선수에게 전방 압박을 하고 나머지 선수들은 자리를 잡거나 덫을 놓는 존 프레싱으로 전술에 살짝 변화를 주었다. 또한 17-18 시즌 초반 슬럼프에 빠질 위기에 처하자 전격적으로 RB 라이프치히의 4-2-2-2 전술을 도입, 체임벌린과 고메즈를 적절히 시프트시키며 변형 3백도 능동적으로 활용하여 연승을 기록, 위기에서 한발짝 빠져나오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답니다.

여기에 17-18 시즌 후반기 챔피언스리그 토너먼트에서도 클롭의 유연성은 빛이 났는데, 8강 맨시티와의 1차전 상징적인 카운터 프레싱을 비롯해 3골 우위를 점한 뒤에는 4-4-2 두 줄 수비를 활용해 무실점을 지켰으며, 2차전 내내 선수비 후역습으로 일관하며 결국 원정골은 물론 1-2 승리까지 따냈다. 로마와의 4강 1차전에선 상대가 역으로 강한 중원을 바탕으로 전방 압박을 실행하자, 중원은 순수 볼탈취용으로만 활용하고 공을 되찾아올 시엔 중원을 생략하여 곧바로 마네, 피르미누, 살라를 겨냥하는 빠른 롱볼로 상대 뒷공간을 털어먹으며 5골을 득점했답니다.

또한 17-18 시즌부터는 로테이션을 굉장히 많이 돌린다. 물론 16-17 시즌 후반기에도 수치적으로는 로테이션이 많았으나 어디까지나 부상과 부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돌리는 느낌이었으며 감독이 생각하는 포메이션과 베스트 11은 몇 경기 라인업만 뽑아 보면 축구 문외한도 알 수 있을 정도였다. 반면 17-18 시즌 박싱데이 때는 이전 경기와 비교해 선발 라인업에서 최대 7명까지 변화를 주기도 했으며 살라, 마네, 쿠티뉴, 피르미누 등 공격진 에이스들을 풀가동하지 않을 때도 잦았다. 그 결과 리버풀은 해당 시즌 프리미어리그 팀 들 중 가장 로테이션을 많이 돌린 팀으로 자리매김하였다. 이후 18-19 시즌부터 19-20 시즌까지는 로테이션을 자주 돌리지 않았다가 20-21 시즌 줄부상 사태로 인해 반강제로 로테이션을 돌린 시즌이 되었고, 이를 방지하고자 21-22 시즌에 로테이션을 꽤 많이 돌렸답니다.

16-17 시즌과 17-18 시즌에 시행착오를 거치며 얻은 깨달음을 바탕으로 18-19 시즌부터는 플랜 A를 4-3-3 포메이션을 기반으로 한 존 프레싱으로 유지하되, 위기 및 특수 상황에서는 다양한 전술들을 구사하는 등 도르트문트 시절과 리버풀 초기 시절 대비 확연히 유연해졌다. 점점 전술적으로 완전체에 가까웠던 바이에른 뮌헨의 유프 하인케스와 유사해지는 중. 이는 앞뒤 안 따지고 늘 강력한 압박을 선호하던 젤리코 부바치 수석코치가 팀에서 이탈한 뒤 밸런스를 중요시하며 탄력을 받았다. 이때 세워진 틀을 기반으로 클롭의 리버풀은 기본적으로 존 프레싱을 중심으로 한 전술을 도입해 압박의 강도를 조절하면서도, 과거 게겐 프레싱을 소화한 그것이 남아있어 간혹 가다 적절한 타이밍에 몇 분간 강렬한 압박을 선보여 일순간에 상대방을 몰아붙이는 화력도 보여준답니다.

비단 프레싱 전술만 잘 짜는 것이 아니라 공격 전술에서도 클롭은 비상한 모습을 보여준다. 일례로 쿠티뉴가 2018년 1월에 바르셀로나로 이적한 후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쿠티뉴의 이탈로 새로운 플레이메이커가 필요해지자 17-18 시즌 후반기에는 체임벌린에게, 18-19 시즌 전반기에는 나비 케이타와 제르단 샤키리에게 그 역할을 부여했다. 다만 이 셋 모두 각자 부상 혹은 부진으로 인해 얼마 가지 못했고, 이에 18-19 시즌 후반기부터는 아예 중원에서의 볼배급을 과감하게 포기하며 볼탈취와 공간 커버 역할만을 맡기고, 그 대신 공격적인 능력이 뛰어난 양쪽 풀백 로버트슨과 알렉산더아놀드에게 플레이메이킹을 전담시켰다. 그리고 이 선택은 신의 한 수가 되어 리버풀은 세계에서 풀백을 제일 잘 활용하는 팀이 되었답니다.

하지만 19-20 시즌 후반기부터 리버풀의 풀백 위주 공격에 대해 박스 안 수비 숫자를 늘리고 풀백들에게 대인마킹을 붙여 측면에서 날아오는 크로스나 패스를 방해하는 파훼법이 나와 리버풀의 공격이 단조로워지자 21-22 시즌부터는 우측 풀백인 트렌트 알렉산더아놀드를 인버티드 윙백으로 활용하고 우측 중앙 미드필더인 헨더슨 및 우측 윙어인 살라와 스위칭 밑 연계를 맡기면서 우측면에서 여러 세부 전술을 활용해 상대의 수비를 썰어들어가는 비대칭 전술을 활용하며 지지부진하던 공격력을 다시 끌어올리는 데에 성공했답니다.

- 친화력과 통솔력

- 선수 및 다른 감독들과의 관계

선수들과 잘 어울리는 친화력을 갖고 있다. 감독과 선수 사이가 아니라 캡틴이라고 할 만한, 믿음직한 리더나 반장을 보는 듯한 정도. 특히 많은 대화를 통해 선수들과의 유대감을 형성하며, 단순히 '감독-선수'의 수직적인 관계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람 대 사람으로서 선수를 대하는 듯 하다. 이에 선수들도 클롭을 잘 따르며, 좋은 팀 멘탈을 보인다.

그 예로 마르코 로이스는 "클롭이 말하는 방식은 프로페셔널한 일에서는 보기 힘들다. 자신의 마법에 걸리게 하고 떠나지 못하게 만든다. 그와 대화가 끝나면 심장이 쿵쾅거렸다. 클롭은 내가 도르트문트에 간 이유 중 하나"라며 극찬을 하였다.#

또 사디오 마네는 “클롭은 축구 외적으로도 정말 괜찮은 사람이다. 그의 인간적인 면은 내게 감동을 줬다. 축구계에서 그런 사람은 정말 보기 드물다”라는 찬사를 남겼고, 조르지뇨 바이날둠은 “클롭은 선수들과 이야기를 자주 한다. 축구 이야기가 아닌 인생에 대한 이야기다. 그와 대화를 나누는 건 즐겁다”라고 밝힌 바 있다.#

이 친화력은 타 팀 선수들에게도 예외가 아니다. 만날 때마다 매 경기 도르트문트를 곤란하게 만들었던 손흥민에게도 그 친화력을 선보이곤 했으며, 토트넘과 리버풀 소속으로 다시 만난 뒤에도 여전하다. 이런 친근하면서도 카리스마 있는 클롭의 성향 탓인지 그가 맡는 클럽마다 팬들의 지지는 절대적이었으며, 입지가 매우 탄탄했다.

다른 감독들과도 경기 때 딱히 불화 없이 웃음으로 맞이한다 이는 선수단은 물론 보드진과의 관계에 있어 마인츠와 도르트문트 양 구단에서 문제가 있던 투헬과 상당히 다른 점이기도 하다.

더불어 탁월한 동기부여와 뛰어난 통솔력을 바탕으로 많은 선수들이 그에게 깊은 존경심을 표현하고 있는데, 전 소속팀인 마인츠와 도르트문트의 선수들은 물론, 현재 리버풀에서도 그에게 존경심을 표현하는 선수들이 굉장히 많다.

그 예로 조던 헨더슨은 ''그가 우리를 믿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 덕분에 우리도 스스로 믿음을 갖게 됐다. 클롭이 우리에게 그런 믿음을 심어줬다. 우리는 종료 휘슬이 울리는 순간까지 싸워야 한다"며 굳은 신뢰를 표했다

또한 사디오 마네는 “우리 선수들은 경기장이나 훈련장 상관하지 않고 그를 위해 무엇이든 할 준비가 되어 있다. 그는 전쟁에 나가고 싶도록 만들어주는 감독”이라며 말했고,# 심지어 로베르트 레반도프스키는 "난 그를 위해 불길을 뚫고 갈 수 있다"고 했으며, 아담 랄라나 역시 "난 이 사람을 위해 죽을 수도 있다"라는 코멘트를 남겼을 정도랍니다.

이 밖에도 많은 선수들의 리스펙을 받고 있는 엄청난 덕장으로 알려져 있다. 또 클롭 밑을 거쳐간 많은 선수들은 가끔씩 클롭을 아버지라고 비유하기도 한다. 선수들이 아무리 몇 번이나 경기에서 실수를 범해도 선수가 계속해서 성실하고 훈련장에서 열심히 하면 믿음을 주기로 유명하다. 실제로 본인 스스로도 인터뷰에서 "승리는 선수들 덕이지만 패배는 내 책임이다"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 다만 워낙 기량미달의 선수들도 끝없이 감싸주고 무수한 기회를 주다보니 팬들이 답답해하는 경우도 종종 있답니다.

물론 늘 허허실실하는 스타일만은 아니고 선수들에게 호통도 잘 친다. 애초에 세계적인 빅리그에서 감독 생활을 하려면 때로는 선수단을 무섭고 강하게 휘어잡을 수도 있어야 하니까. 버질 판데이크도 하프타임 때 클롭에게 헤어드라이기를 당한 적이 있다고 밝힌 바 있다. 평소에는 따뜻하게, 때로는 엄하게 팀을 이끄는 정말 말 그대로 아버지 같은 스타일.

반면 팀 분위기를 해치거나 약속을 어기는 선수에게는 매우 냉담한 모습을 보이는 듯하다. 그 예가 2016-17 시즌의 마마두 사코. 프리시즌 동안 계속해서 지각을 한 마마두 사코에게 분노해 2군행을 지시했고, 팀이 수비적으로 계속 불안함을 보임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1군으로 부르지 않았다.[40] 결국 후반기에 크리스탈 팰리스로 임대까지 보내버렸으며, 사코는 비교적 성공적으로 임대 생활을 보냈지만, 다음 시즌에 곧바로 완전 이적시켜 버렸다. 필리페 쿠티뉴 역시 당시 팀의 독보적 에이스였으나 그의 이적 파동이 팀 분위기를 해친다며 2018년 1월 이적을 승낙했답니다.

같은 팀에서 뛰지 않았던 선수들과도 친분을 유지한다. 손흥민은 물론이고 즐라탄과도 친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이 선수들에 대한 정이 단점으로 나타낼 때도 있는데 명백한 방출대상에 있는 선수를 한번 더 기대해보겠다며 일명 '믿음축구' 시전으로 방출이 제때 안되는 경우가 종종 생긴다.

= 홈 서포터 팬들과의 관계

클롭이 처음 감독을 맡았던 마인츠부터 유럽 전역에 그의 이름을 드높혔던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그리고 감독으로서 전성기를 맞고 있는 리버풀에 이르기까지 클롭은 유럽 축구 감독 모두를 통틀어서 홈 서포터 팬들과의 유대관계가 유별나게 좋았던 감독이었다. 몇 가지 사례가 될 만한 영상과 설명을 곁들여 보면 아래와 같다.


선수시절의 마지막과 첫 감독직을 순서대로 맡으면서 구단의 첫 분데스리가 승격과 강등이라는 성공과 좌절을 함께 했던 클롭의 마인츠 시절을 담은 영상. 영상의 초반부는 1990년부터 2001년까지 마인츠의 선수로 뛰었던 시절이며, 영상의 1:37부터 나오는 장면은 구단 역사상 첫 분데스리가 승격을 이끈 2004년의 기념행사 장면이고, 2:51부터 나오는 장면은 선수시절부터 감독까지 만 18년을 마인츠에서 보낸 시간을 뒤로 하고 홈 서포터들과 눈물의 작별을 고했던 부분이다. 현재 유럽의 주요 축구감독들 중에서도 안토니오 콘테 감독과 더불어 감정표현이 유별난 감독으로 손꼽히는 위르겐 클롭 감독이 선수와 감독 커리어를 통틀어서 가장 눈물을 많이 흘렸던 때가 이 때였다. 단순히 클롭 감독만 눈물을 흘렸던게 아니라 이 마지막 장면을 함께 한 마인츠의 서포터 다수도 눈물을 함께 했다.

위 영상은 위르겐 클롭 감독의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마지막 시즌이었던 2014-15 시즌, 홈구장 지그날 이두나 파크에서의 마지막 경기 모습을 담은 독일 분데스리가 공식계정 영상이다. 이날 경기 전,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의 2010-11, 2011-12 시즌 분데스리가 연속 우승 및 2011-12시즌 DFL 포칼 우승, 2012-13시즌 UEFA 챔피언스 리그 준우승을 모두 주장 완장을 차면서 보냈던 레전드 선수 제바스티안 켈의 은퇴 기념식과 위르겐 클롭 감독의 고별식이 함께 있던 날이었다. 영상의 1:30 시점부터 이날 구장을 만원으로 채운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팬들의 환호 속에 클롭은 마지막으로 쥐트리뷔네의 팬들을 하나로 이끄는 특유의 어퍼컷 펀치를 시전하였다니다.

위르겐 클롭 감독이 리버풀의 홈구장 안필드에 입성한 첫 시즌인 2015-16 시즌, 중도 부임이라는 난관를 딛고 당시 UEFA 유로파 리그 8강전에서 그의 친정팀 보루시아 도르트문트를 상대로 기적과도 같았던 명승부인 안필드의 기적(2016년)을 연출해냈고, 이후 준결승에서 비야레알 마저 꺾어내며 팀을 결승전으로 이끄는 대단한 지도력을 발휘하였답니다

이 당시 경기를 끝내고 난 뒤의 구장 분위기를 안필드의 메인 스탠드에서 바라본 영상. 영상의 0:30부터 클롭은 피치의 뒤쪽을 향해 있던 케니 달글리시 경 스탠드를 시작으로 왼편에 있던 안필드 로드 스탠드, 오른편에 있던 스피언 콥 스탠드, 영상 촬영자가 있던 메인 스탠드 순으로 어퍼컷 세레머니를 시전하면서 경기장을 찾아온 서포터들의 열기를 더욱 더 들끓어 오르게 하는 풍경을 연출하였답니다.

이미 이 시즌의 리그 경기 중에도 홈 경기 때 팀 벤치 뒤쪽의 메인 스탠드 관중들에게 중간 중간 응원 독려 차원에서 관중들에게 어필을 하였던 클롭 감독이지만 모든 스탠드를 다 향하여 어퍼컷 세레머니를 날려서 경기장의 분위기를 끌어 올린 건 이때가 처음이었다. 이후 클롭의 이 어퍼컷 세레머니는 현재까지도 홈경기 승리시 높은 확률로 안필드의 대표 스탠드인 스피언 콥 스탠드를 향해서 보여주는 클롭 감독의 시그니처 세레머니가 되었답니다.

- 여담

축구 팬들 사이에서는 성격이 굉장히 유쾌하고 입담도 재치있기로도 유명하다. 실제로도 인터뷰를 할 때의 모습을 보면 특유의 유쾌한 성격과 재치 있는 입담으로 기자들에게 웃긴 답변도 해주면서 분위기메이커 같은 역할을 한다.

선수 시절인 1995년에 프랑크푸르트 대학교에서 스포츠 과학을 공부한 인텔리이기도 하다.

형인 알렌 클롭은 위르겐의 도르트문트 감독 시절 에딘 테르지치와 함께 선수 스카우터로 활동했다.

이혼 경력이 있으며 전 부인과의 사이에 낳은 아들이 하나 있다. 그리고 재혼한 현 부인이 데려온 양아들이 있다.

2006년 월드컵 때 축구 해설위원으로 활동한 이력이 있다. 김동완 해설위원의 말에 따르면, 독일 특유 딱딱한 방송과는 다르게, 위트가 넘치는 멘트와 함께 쉽고 편하면서도 상세한 해설을 함으로서 전국민적인 사랑을 받았다고 한다

2013-14 시즌부터 겨울 이적시장에서 지동원을 영입하였다. 정확히는 선덜랜드, 아우크스부르크와의 삼자 협상 끝에 데려오는 것으로, 아우크스부르크에서 반 시즌을 뛰다가 도르트문트에 자유계약으로 와 2014-15 시즌부터 뛰는 특이한 형태이다. 이로서 선덜랜드는 안 쓰는 선수를 처분한데다가 돈까지 받아 좋고, 아우크스부르크는 단기간에 골가뭄 해결할 수 있어서 좋고, 도르트문트는 스쿼드를 보강할 수 있어서 좋은 윈윈윈 계약을 맺게 되었다.

그런데 그 지동원이 분데스리가 복귀전인 도르트문트전에서 교체투입된지 2분만에 골을 넣어 경기를 무승부로 만드는 바람에 도르트문트의 2위 탈환에 제동을 걸었다. 한편, 지동원을 영입하고 기자들에게 "골 못 넣는 공격수를 키우는 것도 재밌겠지."라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또한 지동원의 이름을 마음에 들어했다.

독일에서는 보루시아 도르트문트를 부활시킨 명장인데다가 큰 키와 미중년스러운 간지나는 외모, 그리고 재치있는 입담 등으로 인해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독일 축구계 최고의 인기 스타라고 한다.[55] 푸마나 자동차 회사인 오펠, 그리고 여러 의류 용품 회사에서 모델을 하고 있다고 한다.

- 2014년 8월 10일, 리버풀은 프리시즌에 도르트문트와 친선 경기를 갖게 되었는데 당시의 도르트문트 감독이 바로 위르겐 클롭이었다. 그 때 위의 사진처럼, 안필드를 방문한 클롭이 'This Is Anfield' 액자를 손으로 터치하는 모습이 잡혀 일부 콥들은 뭔가 묘한 느낌이 들었다고 한다. 그런데 약 1년 후, 그는 리버풀의 감독으로 부임하면서 일종의 시그널로서 재조명 받게 되었다.

2015년 10월 리버풀 부임 기자회견 당시, 4년 안에 우승 트로피를 들지 못 한다면 스위스로 가겠다는 말을 했었다. 그리고 이 때문에 리버풀이 우승컵을 놓칠 때마다 클롭이 스위스로 갈 것이라며 안티들이 조롱했었다. 그러나 2019년 6월,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차지하면서 그 약속을 지켰고 리버풀을 기나긴 무관에서 탈출시켜 이후 그것에 대한 조롱도 사라졌다.

그런데 클롭이 왜 하필 스위스를 언급했는가에 대해 한 동안 거의 알려지지 않아 리버풀 팬들도 제대로 반박하지 못했었다. 후에 클롭이 밝히기로는 마인츠 시절, 그의 멘토 매니저가 사망하기 전에 클롭에게 나는 스위스 산 속에 묻혀있을 테니 후에 자신을 찾아와 그가 겪은 이야기들을 얘기해달라고 말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마냥, 스위스에 가겠다고 한 것이 아니라 은퇴를 각오하고 했던 말들이었던 것.

우연의 일치인지 공교롭게도 클롭이 감독으로 지낸 마인츠,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리버풀 세 클럽 모두 서포터즈에서 You'll Never Walk Alone을 응원가로 사용한다.

안필드에서 무려 50년째 장내 아나운서를 맡고 있는 조지 세프턴의 말에 의하면, 클롭을 처음 보고 인사와 함께 "저는 조지에요!" 말을 건네자 곧바로 "아! 당신이 바로 그 안필드의 유명한 목소리이시군요!"라고 알아보며 악수를 하고 허리 숙여 인사를 했다고 한다. 또한 자신에게만 그런게 아니라 클롭은 당시 부임한지 일주일이 채 되지 않았음에도 시니어 선수들과 유스 선수들, 훈련장의 스태프들, 요리하는 직원들, 구단의 미화원 아주머니와 사무실 사람들 이름까지 모두 알고 있었다고 세프턴은 전했다

감독으로서 워낙 능력이 좋기 때문에 매번 여러 빅클럽들의 오퍼를 받지만, 의외로 데려오기 쉽지 않은 감독이기도 하다. 커리어를 봐도 알겠지만 본인이 이적을 적극적으로 하는 사람이 전혀 아니기 때문. 도르트문트 오기 전에 마인츠에서는 선수 시절부터 감독 생활까지 합해 무려 18년이나 있었다 참고로 알렉스 퍼거슨이 맨유를 감독한 기간이 27년이라는 걸 생각하면 클롭 역시 한 팀에 매우 진득하게 있는 사람이라는 것.

그만큼 자신이 속한 팀에 상당한 의리를 가지고 있으며 계약 기간도 매우 충실히 지키는 편. 리버풀 부임 이후에도 이런 성향은 바뀌지 않았는지 꾸준히 소속팀에 애정을 드러내고 있다. 인터뷰에 따르면 오래 전부터 리버풀의 팬이었고, 60세 이전에 은퇴할 계획이며 자신이 맡았던 팀이 마인츠,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리버풀 세 팀으로 마무리 되기를 희망한다고 한다.

팀을 맡을 때 속된 말로 본인이 '꽂힌' 팀을 선호하는 편이다. 마인츠의 감독으로 부임할 때도 권유를 들은지 거의 5초만에 '까짓 거 한 번 해보지'라며 바로 결정했고, 마인츠에서 나올 때 바이에른 뮌헨도 클롭을 노렸다는데 칼 하인츠 루메니게가 자기가 술 먹고 클린스만을 선택했었다고 반 농담 반 한탄조로 얘기한 적이 있다. 또한 도르트문트 지휘봉을 내려 놓고 쉬는 동안 유수의 클럽들이 감독직을 제안했지만 모두 거절했다. 그 이유가 걸작인데 '땡기지 않아서', '내 팀이란 생각이 들지 않아서'라고.

2019년 로비 파울러의 인터뷰에 따르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레알 마드리드 같은 슈퍼리치 클럽들이 감독직 제안을 해왔지만 축구보다 상업적인 면에 중점을 두는 것이 싫어 거절했고 재정, 역사, 팬 등 모든 요소들을 고려해서 리버풀을 선택했다고 한다. 클롭 역시 도르트문트 감독직을 내려놓고 한동안 쉬고 싶었지만 리버풀의 제의는 듣자마자 거절할 수가 없었다고 밝혔다. 또한 필 톰슨에 의하면 클롭에게 맨유 감독 제의가 왔을 때 클롭의 아내가 만류하였고, 이후 리버풀의 감독으로 부임하자 그의 아내는 옳은 결정이라며 지지하였다고 한다

라이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레전드 감독인 알렉스 퍼거슨은 클롭이 리버풀에 부임할 당시 인터뷰에서, "리버풀이 클롭 감독을 선임한 것은 아주 좋은 계약이다. 나는 그를 존경하며 리버풀에서 잘 해낼 거라고 생각한다"라 했다. 또 이후로도 퍼거슨은 클롭의 열정이 리버풀의 정체성을 회복시켰다고 찬사를 보냈고,# 제이미 캐러거 역시 퍼거슨과의 개인적 일화를 통해 클롭이 리버풀을 성공으로 이끌 것을 전부터 확신했다고 밝혔다. 물론 클롭 역시 퍼거슨에게 여러 차례 존경을 표한 바 있다.

영국 언론에 상당히 스트레스를 받는다. 2017년 12월 인터뷰에서 퍼거슨이나 뱅거 같은 장기집권에 대해 묻자 "지금의 언론과 함께라면 그건 불가능할 것 같다."라고 대답하였다. 그보다 좀 전인 12월 10일 에버튼 전 경기 후 인터뷰에서 로브렌의 파울로 인한 페널티킥을 가지고 스카이스포츠 기자와 설전을 벌인 적도 있다. 특히나 영국 언론들은 폼이 좋지 않은 선수들을 물어뜯으려 안달난 반면 클롭은 자신의 선수들은 공식석상에서만큼은 무한히 쉴드쳐주는 경향이 있어 여기에서 마찰이 많다. 클롭은 선수들이 외부의 비난을 받고 휘둘리거나 상처받는 일은 옳지 못하다고 생각하며, 비판을 받더라도 오직 자신만이 받아야 한다고 단호하게 말한다.

대한민국 선수들과 이런 저런 인연이 많은 감독이다. 마인츠 시절 차두리를 측면 공격수에서 오른쪽 풀백으로 포지션 전환을 시킨 감독이며, 도르트문트를 맡은 후 차두리에게 문의 끝에 이영표를 영입하기도 했다. 지동원 또한 본인의 희망으로 영입했으며 이 과정에서 차두리에게 지동원에 대해 물어보기도 했다고 한다. 손흥민에 대한 관심이 높아서 도르트문트 감독 시절 손흥민의 영입을 희망하기도 했다고 한다. 또한 독일 현지에서 슛포러브에 참여하기도 하였다.
정치적으로는 좌파 성향인 것으로 추정된다. 절대로 세금을 깎는 우파정당에는 투표하지 않겠다고 공공연히 밝히고 있다.

리버풀의 영원한 캡틴 스티븐 제라드와 사제지간으로 보낸 시기는 없지만, 제라드가 클롭에 대해 굉장한 신뢰와 지지를 여러 차례 표했다. 몇 가지 일화로, 제라드가 코치 라이선스 과정 일환으로 클롭에게 인터뷰 15분을 요청했는데, 클롭은 무려 90분이나 인터뷰에 응했다고 한다. 이에 "내가 클롭을 만날 때마다 느낀 건 그는 정말 훌륭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무엇을 요청할 때마다 그 이상을 줬다"며 극찬하였다.

또 한번은 "내가 클롭을 위해 플레이 하는 것을 상상해 보라. 나는 클롭 감독 밑에서 뛸 만큼 운이 좋지 않았다. 난 너무 늙었고, 시기를 놓쳤다. 그래서 나는 리버풀 선수들을 질투한다"라고 뼈있는 농담을 던졌고, "클롭과 이야기를 한 후 그의 사무실에서 나와 훈련장을 거닐었을 때, 다시 걸어 들어가 그와 함께 앉고 싶었다. 유니폼을 다시 입고, 리버풀을 위해 달려가서 열심히 뛰고 싶었다. 그는 전염성이 있고, 다른 사람들에게 영감을 준다"라며 클롭을 높게 치켜 세웠다.

이 밖에도 클롭과 함께 경력을 보낸 적이 없으나 과거 리버풀에서 좋은 활약을 했던 다니엘 아게르, 사비 알론소 등이 코멘트를 남겼는데, 아게르는 "정말 클롭의 멘탈리티와 자신을 표현하는 방식을 좋아했다. 그는 항상 자신의 선수들을 응원하는 사람이며, 많은 걸 요구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감독이라면 이런 게 필요하다"라고 찬사를 보냈다.# 알론소 역시 "클롭의 열정적 지도 방식을 한 번 쯤 경험해보고 싶다. 그는 최고의 감독이고, 열정을 보면 감탄이 나온다. 선수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며, 승리를 위해 모든 걸 집중하는 훌륭한 감독이다"라며 극찬을 건넸다

보스턴 레드삭스 경기를 펜웨이 파크에서 직관하는 모습이 NESN 중계진에 의해 찍히기도 했다.

세계 최장 스로인 기록(51.33 미터)을 보유 중인 그뢴마크 코치를 스태프로 합류시켜 화제가 된 바 있다. 그는 "클롭은 혁신가다. 클럽을 발전시킬 수 있는 지식이 있다면 기꺼이 사람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겠다고 말하는 리더"라고 밝혔다.# 이밖에도 단체 라이딩과 프리시즌 중 프로 서퍼를 고용해 리버풀 선수들이 축구 스트레스를 극복하도록 정신력 강의를 듣게 한 적도 있다.

리버풀에서 제공하는 매치데이 터널캠 영상인 ‘Inside Anfield’를 유심히 살펴보면 소소하면서도 재밌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바로 항상 하프 타임 휘슬이 울리자마자 선수들보다도 먼저 라커룸을 향해 가볍게 뛰어들어가는 그의 모습. 많은 감독들이 천천히 걸어들어가는 것들과 대비되는 또다른 포인트이기도 하다. 한 인터뷰에 따르면 하프타임 15분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함이라고.

경기장에서 대체로 운동용 캡에 트레이닝 상하의 차림을 고수한다. 한 인터뷰에 따르면 슈트를 입지 않는 이유로 편안함을 느낄 수 없고, 처음엔 의무인 줄 알았으나 일부 다른 감독이 입지 않은 걸 본 이후 끊었다고 한다

수입에 비해 상당히 검소하다고 한다. 프리미어리그 빅클럽 감독으로서 엄청난 돈을 벌어들이는데도 불구하고, 3,000만원 상당의 오펠제 차량을 이용한다고 알려져 있다.

2019 FIFA 올해의 감독 수상 소감에서 구단과 선수들에 대한 감사 인사 후, 커먼 골[69]이란 자선단체에 가입한 사실과 홍보 등을 하여 화제가 되었다. EPL 감독 중에선 최초로 이 단체에 가입했으며, 수상 소감에서 언급한 이후 커먼 골 홈페이지가 일시적으로 마비될 만큼 파급력이 상당하였다

2019년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의 한스 요하임 바츠케 회장이 자서전을 통해 클롭을 놓아준 걸 여전히 후회하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차라리 클롭만 빼고 나머지 팀 전체를 내보내는 게 나았을지도 모른다"고 회상했으며, 또 "우리는 서로에게 맹목적으로 의지할 수 있는 관계였다. 클롭은 절대 거짓말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항상 정직했고, 그가 나에게 거짓말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도 그에게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고 클롭의 정직한 성격을 치켜세웠다

클롭 '어쩌면 난 꿈꾸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에서 도르트문트 선수들과의 록키 일화, 20대 시절의 가정과 삶, 마인츠 선수에서 감독이 되고 겪은 고충, 안필드의 기적에 관한 개인적 소회와 비하인드 스토리, 커먼 골 가입 계기 등의 여러 이야기를 상세히 언급하였다.

2019-20 시즌 프리미어 리그 우승 후, 과거에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을 내비쳤다. 아버지는 젊었을 때, 아마추어 리그의 골키퍼로 선수 생활을 하셨고 아들이 프로 리그에서 선수 생활을 할 때, 축구 감독이 되라고 자주 격려했다고 한다. 그러나 아들이 선수 은퇴하기 4개월 전에 돌아가셨다고. 또 자신이 젊었을 적엔 아버지를 닮았다고 생각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지만, 최근 거울을 보면서 나이가 든 아버지와 자신의 모습이 너무나 똑같다는 걸 느꼈다고 밝혔다.
젊은 시절 방송에 출연한 모습 수염 없는 클롭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대표적인 교체선수 5인제 찬성론자이다. 20-21 시즌에 코로나 팬데믹 여파로 전세계 주요 리그가 프리시즌 훈련을 짧게 가졌고, 여기에 더불어 시즌 일정도 빡빡했기 때문에 계속 5인제를 부활시켜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해당 시즌에 리버풀은 EPL 구단 중 부상자 수 1위를 달리고 있었다 이후로도 선수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이유로 계속해서 5인 교체룰을 밀고 있다.

2021년 3월 리버풀 U-8 선수들과 랜선 미팅을 가졌다. 선수들이 하나씩 질문을 준비하고 클롭이 답하는 방식으로 약 10분간 진행되었다.

고향팀인 VfB 슈투트가르트와 올랭피크 마르세유에서 뛴 센터백 카를하인츠 푀르스터를 가장 좋아했다고 한다. 그래서 선수시절 등번호는 항상 4번이었다.

가장 기뻤던 경기로는 2019년 안필드의 기적 경기를 뽑았다.

리버풀 부임 이후 유럽 대항전에서 바르셀로나를 제외한 라리가 클럽에게 유독 약하다. 챔스 우승을 달성한 18-19 시즌을 제외한 나머지 유럽 대항전 진출 시즌에서 모두 라리가 클럽에게 패해 탈락했다. 특히 세비야를 상대로는 마인츠-도르트문트 시절부터 유럽대항전 악연을 이어오고 있다.

현 시점 주제 무리뉴의 최대 천적이다. 12-13 시즌 챔피언스리그 4강에서 무리뉴의 레알 마드리드를 만나 1차전 4-1로 털어버리며 결승 진출에 성공, 이 시즌 이후 무리뉴는 경질되었다. 15-16 시즌에는 리버풀로 넘어와 부진을 거듭하던 무리뉴의 첼시를 스탬포드 브릿지에서 1-3으로 격침시키며 무리뉴의 경질에 사실상 결정타를 날렸고, 18-19 시즌 역시 휘청거리던 무리뉴의 맨유를 3-1로 털어버리며 무리뉴를 손수 실업자로 만들어줬다. 20-21 시즌에는 아예 무리뉴의 토트넘에게 더블을 따냈다. 무리뉴 상대 통산 7승 4무 2패로 압도적인 전적을 유지 중이다. 이러면서도 두 감독의 사이는 험악하지 않다. 인터뷰에서 서로 뼈 있는 한 마디 씩 주고 받긴 하지만 오히려 살갑게 인사하는 장면이 더 많이 잡힐 정도.

21-22 시즌 맨시티와의 경기를 앞둔 기자회견에서 기자가 '맨시티와 리버풀의 경기가 프리미어리그에서 제일 재미있는 라이벌전이라는 얘기가 있다'고 묻자, 누가 그렇게 얘기 했냐고 물었던 적이 있다. 기자가 제이미 캐러거가 그렇게 말했다고 답하자 그러면 맞는 말이네요라고 대답했다. 라버풀 레전드인 캐러거의 말을 존중해주는 모습을 보인 셈. 클롭의 센스를 엿볼 수 있는 답변이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