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솔로몬 여자친구 여친 본명 나이 키 고향 프로필 학력 학교

2022. 8. 21. 20:18카테고리 없음

- 프로필 경력 이력

출생 나이
1993년 8월 14일 (29세)
고향 출생지
대구광역시 휘장 대구광역시

직업
시인, 문필가, 가수
혈액형
AB형

MBTI
ENFJ
학력
대구고등학교 (졸업)

종교
개신교
그룹
국민가수

경력
2021년 12월 ~ TV조선 '내일은 국민가수 TOP 3
별명
집시총각, 꼬부기, 홀리몬, k미소, 만찢몬, 목솔깡패, 소울로몬 ,이소몰론

소속사
브이엘엔터테인먼트


대한민국의 시인이자 가수. 내일은 국민가수 경연프로그램에서 3위를 차지하였으며 마성의 보이스컬러, 여심을 홀리는 매력과 큰 키에 잘생긴 외모로 강력한 팬덤을 형성하며 큰 인기를 얻고 있다. 작가로서 저서로는 <그 책의 더운 표지가 좋았다>가 있답니다.

- 이솔로몬의 아버지 어머니(아빠 엄마)와 그의 생애 과거

훤칠한 키에 작은 얼굴, 긴 팔다리의 모델 체형…. ‘누가 봐도 연예인 외모’라고들 했다. ‘네이버 나우’ 라이브 방송을 통해 공개된 유창한 영어 실력에 ‘해외 유학파’ ‘금수저’ 등 각종 추측성 댓글도 달렸다. 영어로 늘 주기도문을 외고 묵상을 한다. 영국식 영어가 주는 귀족적 악센트까지 더해지니 이솔로몬의 매력은 배가 됐다. 첫 방송에서 ‘시인’이란 직업 이외에 그에 대해 알려진 것이 거의 없었기에, 이솔로몬에 대한 팬들의 궁금증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답니다.

그런 그가 기자의 명함을 받더니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저 조선일보 신춘문예에도 응모해 봤었는데….”

‘가수 이솔로몬’의 이야기를 들으려 했더니 “문화부에 계시면 신춘문예 담당하시는 분도 다 같은 부서이신 거죠?”라며 기자에게 오히려 ‘취재’를 한다. 누가 ‘등단 시인’아니랄까 글 얘기부터 나눈다. ‘남들은 돈 안 되는 일에 왜 뛰어드느냐 비웃을진 모르지만, 남들 입장을 대변하는 글 쓰는 사람으로 가치 있게 살고 싶다’고 써내려갔던 그의 과거 속 글자취가 겹쳐진다. “문화부 계시면 성찰하는 시간을 많이 가질 수 있으시겠네요!”라고 말한답니다.

‘성찰…’. 이솔로몬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단어 중 하나다. “고등학교 때까지는 책이란 걸 모르고 살았어요. 한 마디로 열등생이었죠. 하하. 노래하고, 공차고…. 그런데 군대가서 였죠. 인생이 바뀐 게. 어느 날 운문으로 적어놓은 글을 보는데, 그렇죠, 시도 그 일부라 할 수 있죠, 짧은 몇 문장인데 엄청난 통찰력을 응집해 놓은 거에요. 아, 이런 게 깨달음이구나. 이런 게 성찰이구나. 그때 깨우쳤죠.”

23일 막을 내린 TV조선 ‘내일은 국민가수’ 최종 3위에 오른 이솔로몬은 “스물셋 군대 시절 세워둔 인생 목표가 ‘국민가수’를 통해 한층 다가선 것 같다”며 웃었다. “그 당시 10년 뒤, 32살이 됐을 때 TED(세계적인 강연 플랫폼)에 나가 영어로 내 이야기를 들려주겠다고 마음먹었거든요. 한 부모 가정에서, 가진 것 없이 자라도 스스로 믿고 노력한다면 적어도 나만큼은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라고 전했습니다.

- 안타깝게도 혈액암으로 갑자기 돌아가신 아버지 부친

지난 10월 7일 첫 방송. 이솔로몬은 등장부터 여성 마스터를 시작으로 “뭔지 모르겠지만 홀렸다”며 ‘동화’ 같은 스토리의 주인공으로 자리 잡아갔다. ‘대구 출신 집시 총각’이란 소개에 2016년 군대 상사의 권유로 시를 쓰게 돼 문예지 신인상을 받았다는 ‘시인’이란 직업까지 곁들여졌다. 그에게 “아직 의심이 든다”고 누차 말했던 김범수 마스터조차도 ‘숯 속의 진주들’ 팀 미션 공연에서 “정말 잘하네”라며 그의 손을 들어줬다.


최종 결승전에선 임재범의 ‘이 또한 지나가리라’를 선곡해 폭풍 치듯 몰아치는 격한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 시청자를 올려놓았다. 그가 열 세 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홀로 고생하신 어머니를 위한 노래, 이솔로몬이 참아왔던 눈물을 꾹꾹 눌러 목소리로 폭발시키는 동안 대신 눈물을 흘리는 건 시청자였답니다.

마스터점수 1094점. 김동현에 이어 2위였다. 대국민 응원 점수 1위에, 관객점수 3위까지 포함 중간 순위 1위를 기록한 그였다. 최종 3위에 오른 그는 “1등이요? 제가 감히”라며 손사래다. “3억원이요? 원래부터 제 것이 아니었기에 아예 생각조차 안 해봤는데요? 3억원을 받게 된다면, 글쎄요. 저를 위해서라면, 햄버거 하나 사먹겠죠. 하하. 국민가수 톱 7에 오른 것만 해도, 게다가 3위 자리까지 오른 것만 해도 정말 많은 분의 정성 덕분인걸요. 또 여기까지 오른 저에게도 칭찬해주고 싶어요.”라고 전했습니다.

그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중·고등학교 시절은 실존적 방황과 내적 갈등으로 암울하기만 했다 말했다. “아버지가 목사님이셨는데, 참 열심이셨거든요. 근데 어느 날 어지럽다시는 거에요. 검진을 해보니 급성골수염 백혈병이라대요. 혈액암의 일종이라더라고요. 그 질병으로 12월 진단받으시고 이듬해 1월 25일날 돌아가셨어요. 저는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했어요. 학창 시절 내내. 아버지가 안 계시다는 사실을 인지는 하고 있는데 와 닿지가 않고 옆에 계속 계시는 것만 같고. 보통 대부분 슬프고 아프고 하는 게 온몸으로 발현이 되잖아요. 저는 그조차도 남은 식구들, 사랑하는 어머니와 누나에게 짐이 될까 봐 내색하지도 못했어요. 그게 아마 제 노래로 나온 것 같아요.”라고 전했답니다.

- 홀로 견뎌낼 방법, 그것은 정말로 노래였다.

갖고 싶은 것도, 하고 싶은 것도 많을 학창 시절. 그는 ‘원래 가질 수 없는 것’이라고 스스로를 설득시켰다. “여건을 뻔히 알잖아요. 배우고 싶은 것도 많았지만, 그저 다 포기해야 한다 생각했어요. 아마 제가 뭘 하고 싶다고 하면 어머니께서 어떻게 해서든, 쥐어짜서 여건을 마련해 주셨을지도 몰라요. 근데 어머니도 힘든데, 그걸 제가 아는 데 바라면 안 되죠.”

가정주부였던 어머니가 생활 전선으로 나가는 뒷 모습을 보며 아들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얼까 써내려갔다. “‘스스로 네 인생을 개척해 나가야 한다’고 마음먹었지요. 언제 무슨 일이 생길지, 누구도 앞날을 장담할 수 없잖아요. 무슨 일이 나더라도 홀로 견뎌낼 방법을 찾아보자 했어요. 그게 바로 노래였고, 가수가 되는 것이었어요.” 돈을 내고 배울 만한 형편은 아니었다. 처음엔 무작정 따라불렀다


“원리원칙대로 숨소리 하나까지 그대로 따라불렀어요. 그러다 보니 제가 좋아하는 가수분들의 창법을 하나씩 분석하면서 부르게 되더라고요.” 목회하시기 전 성악을 하셨던 아버지의 음악성은 이솔로몬에게 그대로 옮겨와 있었답니다.

‘가수’라는 직업이 머릿속에 박힌 건 초등학교 때 TV에서 무대의 핀 조명을 보면서. 어둠의 정적을 깨고 백색 조명이 가수의 머리 위로 내려앉는 그 모습이 잊히질 않았다. 자려고 눈을 감는 데 어느새 자신이 핀 조명을 받는 무대 위 주인공이 돼 있었다. “심장이 덜컹덜컹하고 빨리 뛰더라고요. 너무 좋고 설레서요. 그래서 이게 내 길인 거구나 했지요.”

본격적으로 가수가 되겠다 마음먹고는 일단 노래 연습부터 했다. “혼이 나야 더 잘하는 사람이 있는데, 저는 칭찬을 받으면 단점이 개선되는 스타일이거든요. 잘한다 하면 뭐랄까요, 진짜 잘해지는 느낌에 정말 열심히 하게 돼요. 그 맛에 취해 (스타라는) 헛된 꿈을 품고 엄청 연습했죠. 하하.”라고 언급했습니다.

먼데이키즈 김민수부터 바이브, 포맨 등 흔히 ‘남자들의 로망’이라 불리는 가창력의 신(神)의 노래는 다 따라불렀다. 좋아하는 가수에 따라 발라드부터 알앤비, 소울 등 장르도 확장됐다. 그러다 서울 서 가수 준비하다 XIA(시아) 준수의 ‘가지마’ 노래를 듣고는 너무 깊게 와 닿았다고 했다.

“처음 들었을 때의 충격이 아직 가시지 않아요. 1년 넘게 시아준수 님의 노래만 계속 불렀던 것 같아요. 자면서도 중얼중얼할 정도였으니까요. 한참 지나니까 그분의 발성을 자연스레 카피하게 되더라고요. 그러다 박효신 님의 노래를 따라부르게 됐는데, 부르면 부를수록 제 부족함이 드러나는 거에요. 준수님 카피할 때도 부족하다, 고치자 하며 계속 부르고 또 불렀는데, 박효신 님 노래를 부르면서 어느 날 무릎을 철썩 치게 됐죠. ‘내가 가져야 하는 건 힘이다.’”

중학교 때부터 스무살 넘을 때까지 재즈, 발라드, 알앤비 등 따라부르면서 발성 기교 등 노래 기법에 대해 스스로 배우고 깨쳐 왔지만, ‘노래의 근본’부터 파헤친 계기가 됐다. 대학 진학 대신 스무살에 서울에 있는 엔터테인먼트 회사 오디션에 합격했다. 5인조 아이돌 그룹을 만든다 했다. 백댄서로 한두 번 무대를 경험했다. 하지만 자신들만의 무대는 나서보지도 못하고 회사의 재정 문제로 팀이 1년여 만에 해체됐다.

“좋은 결실을 맺은 건 아니지만, 노래하면서 보낸 10년이 헛된 건 아니었구나 생각했어요. 이때 까지 연습해온 것 덕분에 서울에 올 기회도 잡았고, 그 당시 다른 엔터사에서도 면접 보자는 얘기를 여러 곳에서 들었어요. 음악은 꾸준히 오랜 시간 공을 들여야 하는데, 누군가 인정해주기도 하고, 이렇게 찾아주는 사람이 있으니, 그래도 잘 해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죠.”라고 전했습니다.

◇ ”연대장님이 건넨 ‘넌 훌륭한 시인이 되겠다’ 한마디가 인생 바꿔”

이솔로몬은 “군대에서 인생의 행로가 또 한 번 바뀌었다”고 말했다. 서울서 가수 데뷔가 무산된 뒤 대구로 다시 내려왔다. 자립해 다시 가수에 도전할 수 있는 돈을 벌고자 핸드폰 조립 공장에서 일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군대 영장이 나왔다. 10일 만에 입대했다. “그다음 행선지를 정하지 못한 채 입대하게 됐어요. 중·고등시절은 ‘열등생’으로 우울하고, 어쩌면 비참하게 보냈으니 격렬하게 내 자신을 바꿔보고.싶다는 의지가 있었죠.”


강원도 화천에서 운전병을 맡았다. 대구에서 태어난 그는 초등생 시절 목회자인 아버지를 따라 예천, 영천, 포항 등지를 옮겨 다니긴 했지만 최전방에서 군 생활을 하게 될 지는 몰랐다. 기왕 운전대를 잡았으면 최고의 운전병으로 기억되고 싶었다. 제대 뒤 어떤 일을 하면서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으로부터 군 생활을 시작했다. 무의미하게 시간을 흘려보내고 싶진 않았답니다.

“학창 시절 때는 책상에 앉아있는 습관조차 제대로 돼 있지 않았거든요. 공부도 잘했을 리가 없고, 공부하는 습관도 들지 않았고….한 마디로 열등생이었죠. 축구 좋아했지만 정말 잘하는 애들에 비하면 열등생이었고, 농구도 마찬가지고. 하지만 인생 열등생이 되고 싶진 않았어요. ‘제가 한 말과 행동에 책임을 져보자’면서 스스로를 시험대에 놓았죠.”

군에서 처음 시도한 건 배식받는 량을 조절하는 것. 어느 지점에 배가 불러 고통스러워 지면 그 분량 이상 먹지 않는 것이다. 그 약속을 제대할 때까지 지켰다. 군에서 안 먹고, 안 자는 건 상상도 못할 일. 게다가 1호차 운전병이었다. 그는 인생에서 자신이 나아갈 길을 찾기 위해 사흘을 몰래 식사도 거르고 잠도 줄였다. 인생 다이어그램을 그려 자신이 좋아했던 일 할 수 있는 일 하고 싶은 일을 줄줄이 정리해 나갔답니다.

“마지막까지 교집합을 찾다 보니 최종적으로 남은 게 ‘소통’이더라고요. 제가 여지 껏 음악을 좋아했던 것도 노래를 통해 전달되는 그 느낌이 소통 될 때 희열을 느꼈던 것이거든요. 소통을 제대로 하는 역할을 해낸다면 인생이 가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때부터 소통을 ‘키워드’ 삼았어요. 그날이 3월 6일에서 8일까지였어요. 수첩 달력에 ‘내 인생이 변한 날’이라고 써 놓긴 했는데, 그렇다고 그 날짜가 될 때마다 무언가 홀로 기념을 한 건 아니고요.(웃음)”

모든 필연을 만드는 우연은 예기치 않은 순간에 찾아온다. 그날도, 모든 우연의 연속이 지금의 그를 만들었다. 자신의 목표를 ‘소통’으로 정한 날 자신이 모시기로 한 연대장의 회의가 길어졌다.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그에게 연대장은 ‘기다림’이란 단어를 꺼내 들었다. 기다림을 주제로 글 한 편 써보면 어떨까 하는 권유였다.

“그날 퇴근도 안하고 밤늦게까지 기다림에 대한 시를 적었죠. ‘초승달이 보름달이 되기까지 그 긴 기다림은 얼마나 간절한가. 밤이 다시 아침을 맞이해 밝음을 되찾을 때까지의 성숙한 기다림은 축복이다’ 이런 내용의 시를 적어서 연대장님께 보여드렸거든요. 연대장님이 굉장히 선비 같으신 분이세요. 글자도 삐뚤빼뚤, 맞춤법 띄어쓰기도 제대로 안 맞는데, 그걸 보시고는 굉장하다고, 훌륭한 시인이 될거라 칭찬해 주셨어요. 정말 큰 격려가 됐죠. 제가 시를 쓰면 그걸 프린트해서 코팅해 차에 붙이고 다니실 정도셨죠. 저는 그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정말 열심히 썼구요.”

하지만 아무리 써도 한계가 있었다. “마음먹고 인생을 다르게 살아봐야 겠다 했죠. 전역할 때까지 9개월 남은 동안 100편의 시를 쓰고 100권의 책을 읽자는 목표를 세웠어요. 또 소통을 하자면 외국어도 필요하기 때문에 영어를 해야겠다 했죠. 친구들한테 들으니 원서를 한 시간씩 소리내서 읽으면 영어가 들리고 말할 수 있다 해서 단어 뜻도 모르고 내용도 모르면서 무작정 매일 한 시간 씩 원서를 읽어나갔죠. 결국 제대할 때 100편 넘는 시를 쓰고, 100권 넘는 책을 다 읽었어요.”라고 전햇습니다.

◇ 1년에 무려 책 1000권 읽기, 매일 글쓰기, 원서 외우기를 한다!

이솔로몬은 제대 뒤 2016년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종합예술지 ‘예술세계’에서 신인상을 받았다. 하지만 자신에게 ‘시인’이란 호칭이 붙는 게 그토록 부끄러울 수 없다고 했다. “배움이 많이 부족하니 적절한 언어를 끄집어 내는 데도 한계가 있고, 응축해 내는 실력도 많이 부족하다 느꼈지요.” 레스토랑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도서관에서 새벽 서 너시까지 책을 읽었다. 1년간 1000권 읽기, 매일 글쓰기를 목표 삼았다. ‘이것도 못하면 넌 인간이 아니다’라는 생각으로 뛰어들었다.


2017년 12월에 접어드니 읽은 책이 930권을 넘어섰다. 그 뒤로도 계속 글을 썼다. 지금껏 다섯 권 분량의 책을 썼다. 그 중 하나가 지난해 7월 출간된 ‘그 책의 더운 표지가 좋았다’다.

‘네이티브’처럼 하는 영어구사도 마찬가지다. 하루 한 시간씩 읽던 원서도 어느 날부터는 영어 대본을 통째로 외우기 시작했다.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가 너무 좋아서 대본을 정말 100번도 넘게 본 거 같아요. 통째로 다 외워버렸죠. 그 뒤에 휴 그랜트가 주연한 영화의 대사는 있는 대로 외웠죠. 노팅힐, 러브 액추얼리...그러다 ‘마법의 560문장 듀오’란 책이 있거든요. 그 책을 통해 계속 말하기 연습도 하고, 나중엔 외국인 친구들과 만나 대화하면서 자연스레 익혀갔지요.”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통역요원으로도 선발됐다.

이솔로몬이 최종 결승 ‘인생곡’으로 택한 임재범의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일찍 혼자되신 어머니를 위해, 또 오랜 기간 우울했던 그의 삶을 담은 이야기이자 힘든 길을 걷고 있는 모두에게 힘을 주고 싶어 선택한 곡이다. ‘너의 손을 붙잡고 끝없는 폭풍 속을 이 거친 파도 속을 뛰어들 자신이 있어…’라는 가사가 그의 마음을 대변하는 듯 했답니다.

“격변하는 파도의 흐름 끼리 부딪히는 그 깜깜한 밤을 헤메다 어느 바다 위에서 눈을 뜬 제 인생을 반추하는 듯했어요. 음악을 하고 글을 쓰며, 대학을 가지 않고, 사교육 한번 받아보지 않고도 이렇게 살아갈 수도 있다는 걸 증명해내면서 겪는 설움이나 분노 같은 것들을 담아내 응어리진 감정을 노래로 쏟아냈다 할까요. 묵묵히 지켜보신 어머니를 위해 ‘이겨내서 보여드리겠습니다’라는 마음도 담겨 있었어요.”

◇당신이 겪는 어려움, 이 또한 바로 지나가리라

그로 인해 얻어지는 영광이나 명성은 자신의 몫이 아니라고 했다. 비루하고 우울에 가득 차 있던 삶에서 벗어나는 강인한 의지를 심어 줄 수만 있다면, 그만큼 가치 있는 삶이 또 어디 있을까 싶다 했다. “10년씩 계획을 삼는 사람은 많지 않을 거라 생각해요. 그래도 포기하지 않으면 이루어갈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귀감이 되고 싶었어요. 간절함을 소명삼아 원대한 꿈에 한 발짝 다가서는 거지요.”

이미 ‘큰’ 사람이 돼 버린 듯한 그에게 “이제 다 이룬 것 아니냐”고 했더니 “(김)유하에 비하면 한참 멀었어요”라며 웃는다. 팀미션 ‘숯 속의 진주들’로 또 준결승 듀엣으로 호흡을 맞추며 경연 함께 한 시간이 많아서인지 막내 유하만 생각하면 그냥 미소가 나오는가 보다.

“유하가요. 진짜 대단한 게 뭔 줄 아세요? 아니, 방송에는 안 보였을 텐데, 같이 있으면 ‘삼촌, 평소대로만 하면 돼’라면서 제 등을 두드려줘요. 하하. 사실 경연이란 게 어렵잖아요. 게다가 어리니까 투정할 법도 하고 짜증 낼 법도 한데, 저보다 늘 의연하니까. 유하보면 늘 배워요. 유하버스에 제가 탑승한 거죠. 하하”

32살까지의 인생 목표를 향해 차근차근, 때론 치열하게 다가서고 있는 이솔로몬. 그가 그리는 그 이후의 이솔로몬은 어떨까. “글쎄요. 아직 없어요. 그때는 그때 또 그려놓겠죠? 하하. 제가요. 일용직 뛰면서 페이트칠, 외장 철거, 내장 목수, 외장 목수, 도장, 벽지, 설비 철거, 택배 상하차 다 해봐서, 웬만한 건 다 잘하거든요. 이젠 뭐든 다 할 수 있을 거 같아요. 그릇이란 말 있잖아요. 제가 세상에 담아내고 그려낼 그릇의 역할이 어느 정도까지 주어졌는지는 모르겠지만 저 어디든 쓸모 있지 않겠습니까?”라고 전했답니다.

- 이솔로몬의 여자친구?? 김유하???

가수 이솔로몬과 김유하가 22세 나이 차를 뛰어넘은 케미스트리를 자랑했다. 지난 2022년 3월 13일 방송된 TV조선 ‘내일은 국민가수 토크콘서트’에서는 베스트 커플 이솔로몬과 김유하의 경연 뒷이야기가 공개 됐답니다.


김유하는 연습 중 이솔로몬과 팀이 되자 “이솔로몬 삼촌이랑 팀 하고 싶었는데”라고 기뻐하며 이솔로몬의 무릎에 눕는가 하면 손을 꼭 잡는 등 한 시도 떨어질 줄 몰랐답니다.

집에서도 이솔로몬 영상을 본 김유하는 “이솔로몬 삼촌이 더 좋아질 것 같아”라고 말했고, 이후부터 이솔로몬과 눈을 마주칠 때마다 부끄러워 했다.

이솔로몬은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김유하를 위해 가방을 사러 갔다. 매장 점원에게 이솔로몬은 “내 여자친구가 7세다. 우리 공주님은 핑크색을 좋아하는데”라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가방 선물을 받은 김유하는 기뻐서 어쩔 줄 몰랐고, 이솔로몬은 “이거 메고 초등학교 가면 잘 가야 한다”라고 따뜻하게 안아줬다.

집에서 가방 정리를 하던 김유하는 “이거 가방이 너무 예쁘다”며 “솔로몬 삼촌은 마음도 착하고 잘 생겼다. 학교 가면 솔로몬 삼촌처럼 책도 많이 읽고 영어도 잘해야지”라고 기뻐했답니다.

- 지난 2022년 1월 한 인터뷰에서 자신의 이상형에 대해서 언급했던 이솔로몬

TV조선 ‘내일은 국민가수’에서 막내 김유하(7)를 살뜰히 챙기며 ‘유하 바라기’ 면모를 과시했던 이솔로몬(29). 그가 지난 6일과 13일 방송되는 ‘국민가수-토크콘서트’(이하 ‘토크콘서트’)를 통해 국민가수 공식 ‘유하 보호자’로 거듭나고 있다.

이솔로몬은 국민가수 경연을 통해 김유하와 함께 ‘숯속의 진주들’로 호흡을 맞춘데 이어 ‘1대1 라이벌’전에서 살가운 듀엣을 선보이는 등 훈훈한 ‘삼촌-조카’ 케미를 선사하며 시청자들의 응원을 받은 바 있다. 6일 방송된 ‘토크콘서트’ 1회에서도 유하를 향한 이솔로몬의 든든한 ‘보호자’ 역할은 카메라 외곽에서도 시청자의 눈길을 사로잡았답니다.

생수 뚜껑을 따주거나, 유하의 동선에 맞춰 ‘매너 손’으로 길을 터주는 등 세심한 배려가 화제가 된 것. 13일 방송되는 2회에서도 ‘유하 삼촌’의 역할을 톡톡히 해낼 것으로 보인다. 유하에 대한 솔로몬의 다정한 시선은 기자와의 인터뷰 속에서도 녹아있었다. 지난 인터뷰 중 미처 다 전하지 못한 그의 이야기를 추가로 소개한다.

-공식 계정 유튜브에서도 유하양을 ‘비주얼 톱1′로 유하를 꼽으셨던데요, 서로 의지하며 응원하는 ‘삼촌-조카’ 케미가 화제였습니다.

“유하, 정말 예쁘죠. 공주님이에요. 제가 공주라고 불러요. 전화나 카톡 오면 ‘아이고 우리 공주’라고 합니다. 하하.”

-언제부터였나요?

“언제랄 것도 없습니다. 전 이미 매료됐습니다. 제 딸이었으면 좋겠어요. 이쁘게 잘 키울 수 있을 거 같은데, 제가 나가서 막일이라도 하겠습니다. 허허허. 무슨 일이든, 무슨 기술이든 다 배우겠습니다 그런 마음이더라고요.”라고 전했습니다.

-어떤 점이 좋았어요?

“유하가 정말 어른스러워서 ‘7세가 맞나?’ 그런 생각이 많이들어요. 무대 올라가기 전에, 흐흣 어이가 없네(웃음), 제가 이렇게 앉아있으면 ‘삼촌!’ ‘응?’ ‘평소대로만 하면 돼’라면서 등을 툭툭 두드려줘요. 어른들이 하는 거 평소에 봤나봐요. ‘고마워 삼촌 평소대로 할께’이라는데, 흐흐. 그게 그냥 힘이 돼요. 진짜 이뻐요. 하하. 유하 보고싶네. 근데 충격적인 게, 아니, 충격적이지 않다 보실 수도 있겠지만 언젠가 놀랄 실거에요.


어리기 때문에 투정 할법도 한데, 항상 느끼지만 저보다 늘 의연해서, 이게 뭔가 바뀌지 않았나, 나이가 살짝 다르지 않나 생각합니다. 저는 진짜 7세나 9세처럼 행동할 때가 많은데, 유하가 어른처럼 활동할때가 많거든요. 제가 유하 버스 탑승한거죠. 허허헛.”

-유하는 딸 삼고 싶다하셨고, 그럼 이상형은요?

“이상형이요, 저를 품어줄 수 있는 분? 아무래도 예술업에 종사하시는 분들이 예민하고 과민한것도 많고 그런 부분이 없지 않잖아요. 세심하다는 게 결국 예민하고 섬세하다는 것으로 이어질 수 있는데, 그런 기질이나 성정 같은 걸 잘 보듬고 이해해 줄 수 있는 분. 저보다 어른스러운 분?”

-중간에 경연 중 힘들어하시는 부분은 보이긴 했지만, 그렇게 예민할 거 같아 보이진 않은데요.

“저는 근데 이게 사실 1화만 보고 방송을 안봐서요. 1화 방송됐을 때가 3라운드 할 때였거든요. 핸드폰이 폭발하는 거에요. ‘오래전 그날’ 노래 준비하고 있었는데, 이틀 뒤 경연인데, 인생에 중요한 분들이 있잖아요. 저한테 깊은 영향을 끼치시고 길을 터주시고 여러가지로 고마우신 분들이 있잖아요. 그런 분들께 연락을 안드릴 수가 없는 거에요.

그러다보니 경연 전날 까지 연락하게 되고, 노래에 집중 못하고, ‘오래전 그날’도 리허설보다 못해서 ‘방송 안봐야 겠다’ 했는데 아직까지도(결승당일 기준) 안봤네요. 하하. 앞으로 더 바빠서 못볼 수도 있고요. 그래서 방송에 어떻게 비칠지 잘 모르겠는데, 사람들이 말하기엔 뭐라드라. ‘상남자 같다’ 그렇다는데, 그 맞나요? 방송에 보여지는 게?”라고 전했답니다.

-거기에 시인이라는 직업에서 오는 ‘지적(知的)인 면모도 있어 보이고요.

“하하. 그래 보이는 면도 있나요? 방송서는 ‘백마탄 왕자님’ 스타일 의상? 그런 옷을 예쁘게 입혀주시는데, 작가님들이 생각해주신 ‘이솔로몬 이미지’가 있는 것 같아요. 전 소탈하고 소박하고, 평소엔 거지처럼 다니거든요. 머리도 거지존이라 컨트롤이 안되고 그렇다고 예쁘게 손질하고 다닐 줄도 모르고. 멋진 몸매 가진 친구분들도 많은데, 전 비루한 몸이에요. 오늘 입고 온 이 의상이, 그래도 신경 쓴 겁니다. 보시기에 ‘못 보겠다’ 하실 정도는 아니시죠? 이게 유지가 잘 돼야 될 텐데….”


13일 밤 10시 방송되는 ‘토크콘서트’ 2회에서는 지난 방송 박창근에 이어, TOP2 김동현과 TOP3 이솔로몬의 경연 다음 날 일상 모습이 전해진다. 김동현은 경연이 끝나자마자 본가가 있는 부산으로 달려가 가족들을 만나는가 하면, 절친들과 함께 부산 명소 ‘국제시장’을 찾아 패셔니스타가 되기 위한 깜짝 패션쇼를 벌여 웃음을 자아냈답니다.